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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판타지와 나 2> - 송경아

 

 

 

 

 

<바리-길 위에서> 는 한국 전통 무가 바리데기 공주 이야기에 원형을 두고 있습니다. 바리데기 공주는 아들이 없는 불라국의 왕 오구대왕과 왕비 길대부인의 일곱 번째 딸로 태어나 부모를 실망시키고 버림받습니다. 그러나 왕이 병을 앓게 되자 점쟁이는 바리 공주가 아버지를 구할 수 있다고 예언합니다. 왕비는 산신령이 키워주고 있던 바리 공주를 다시 찾아냅니다. 바리 공주는 자신의 부모가 누구인지, 어떤 곤란에 처해 있는지 알게 되자, 아버지의 병을 고치기 위해 길을 떠납니다. 온갖 고난을 겪은 끝에 바리 공주는 불로초와 불사약을 구해 아버지의 병을 고칩니다. 그 공적으로 바리 공주는 저승으로 가는 영혼을 무사히 안내하는 신이 되고, 바리 공주의 부모는 저승을 다스리는 대왕신이 됩니다.

저는 처음 이 옛 무가를 읽고 삶과 죽음을 주제라 한 탐색(quest)에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이 이야기의 배경을 바꾸어 현대적인 이야기로 다시 써 보려고 했습니다. <바리 이야기>는 이런 의도를 가지고 쓴 4편의 연작이고, <바리- 길 위에서>는 그 첫 번째 이야기입니다. 제 이야기에서 바리와 바라의 언니이자 양성인간인(androgyne)인 석금, 그리고 불라국의 국민들은 인간이 아니라 작은 프로그램, 즉 루틴(routine)이고, 이들이 사는 나라 불라국은 ‘전 우주를 수항해는 거대한 프로그램’입니다. 또한 이곳은 ‘잉여도 없고 부족도 없는 세계, 모든 사람들은 세계 안에서 나름대로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곳’입니다. 하지만 불라국의 왕이자 바리의 아버지인 오구대왕이 병에 걸리자 이곳 또한 병에 걸립니다. ‘삶은 끊임없이 조금씩 분실되고 파혼되고, 사람들은 자기 목적지를 향해 가다가 목적지가 어디인지 잊어버리고, 그 중 어떤 것들은 복구 불능인’ 경우마저 생깁니다. <바리-길 위에서>는 이런 세계를 구하기 위해 바리와 석금이 길을 떠나는 부분에서 끝납니다. 새로운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세계를 그 할 수 있다는 희망에 차서 길을 떠나는 바리 공주의 모습은 그 당시 문학 속에서 자아와 세계에 접근하는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을까 모색하던 저 자신의 모습과 겹쳐 있습니다.

 

제 경우를 볼때, 판타지라는 소재는 리얼리즘에서 즐겨 쓰는 소재와 마찬가지로, 저 자신의 불안과 성장, 제가 바라보는 세계를 이야기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어떤 소재가 우월하다거나 열등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잘 할 수 있다면 현실적인 소재여도 상관없고, 환상적인 소재여도 상관없습니다. 그러나 한국에서 리얼리즘을 옹호하는 많은 비평가들이 판타지를 현실과 맞설 용기가 없는 자의 도피라고 비난하거나 아예 무시했습니다. 신문이나 잡지에서 공식적으로 논쟁이 붙은 적은 없지만, 판타지 동호인들은 온라인 상에서 그에 대해 분개합니다. 판타지는 현실에 접근하는 ‘다른’ 방법이라고, 한국 소설의 주류였던 리얼리즘 소설은 자신들에게 판타지 소설만한 충격과 감동을 준 적이 없노라고 항변합니다. 많은 동호인들은 판타지에 대해 비판적인 비평가들이 판타지의 걸작들을 제대로 읽은 적이 없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문학의 가치를 자기 마음대로 독점하고 조작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눈길을 보내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비평가들을 아무소리 못하게 만들 만한 문학적 가치와 대중성을 둘 다 가진 작품이 출현할 것을 애타게 고대하고 있습니다.

 

글쎄요. 이쪽에도 저쪽에도 낄 마음이 들지 않는 저는 이런 흐름의 충돌을 만나게 되면 두 가지 생각을 합니다. 첫 번째는, 도피면 좀 어떤가 하는 것입니다. 현실에서 완벽한 도피한다는 것은 현실에 완벽히 응전하는 것만큼이나 어렵습니다. 그리고 예술에서 완벽한 응전이 사기인 것만큼이나 완벽한 도피도 사기입니다. 억압적인 현실에 완벽하게 응전한다는 작품일수록 세부 형식에서 현실의 억압을 재생산해 내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것은 때로 독자를 우민으로 여기는 계몽의 형식일 수도 있고, 때로 현실의 압제자에 대항할 필요성을 외치면서 내부의 타자를 한 목소리로 억지로 통일시켜 버리는 단결의 형식일 수도 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완벽한 도피라고 해도 어차피 사회와 작가의 상상력이 허용하는 것만큼의 도피입니다. 그리고 사회 속의 개인이 갖는 도피 환상이라는 형식은 역으로 그 사회가 개인에게 어떤 억압을 가하고 있는지 드러내 보여주는 열쇠가 됩니다. 문제는 판타지가 도피라는 미명 하에 현실을 왜곡하거나 억압적인 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하는 도구가 되는 경우입니다. 유감스럽게도 한국의 장르 판타지 중에 이런 길에 들어선 작품들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이런 작품 경향에 대해 경고의 목소리를 내거나 서로 의견을 교환할 수 있는 통로가 없다는 것입니다. 한국의 장르 판타지는 -다른 장르 소설들도 마찬가지지만- 동호인 층의 크기에 비해 담론을 형성할 수 있는 능력이 허약합니다.

 

두 번째는 한국 판타지 소설의 소비 구조가 상당히 왜곡되어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됩니다.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한국의 장르 판타지 소설이 자리 잡은 것은 이영도씨의 <드래곤 라자>가 나온 1998년입니다. 그 이전에도 장르 판타지로 분류될 수 있는 소설이 있었습니다만, 그 이전의 소설들을 장르 판타지가 아니라 ‘통신 소설’로 분류되었습니다. 그리고 <드래곤 라자>가 폭발적인 인기를 끈 독자층은 10대에서 20대 초반 정도였습니다. 5년 정도의 시간 밖에 흐르지 않았지만, 그 동안 한국 장르 판타지는 수많은 분화를 이루었습니다. 10대 청소년들이 즐겨 보는, 개그가 섞인 소원 성취 이야기에서부터 진지한 철학적 문제를 고민하고 화려한 이미지를 구사하는 판타지, 동양적 소재와 서양적 소재의 접목을 시도하는 판타지, 한국적인 정신을 담으려는 판타지까지 수많은 판타지들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 모든 판타지들이 너무 짧은 시간에 너무 집약적으로 나왔다는 점입니다. 판타지의 물량은 쏟아지고, 판타지라는 장르 차제에 재미를 느끼는 독자가 아닌 ‘재미있는 이야기’를 찾아 장르와 장르 사이를 떠도는 ‘거품 독자들’은 장르 바깥으로 새로운 유행을 찾아 사라져 버렸습니다. 남아 있는 독자층이 판타지 작가들이 여러 갈래와 그 창작열을 모두 쫓아가기란 어렵습니다. 독자층이 위축되면서 어떤 풍의 판타지도 충분한 독자를 얻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시장성이 떨어지자 판타지 장르를 포기하거나 박리다매 형의 펄프 픽션으로 취급하는 출판사들이 늘어났습니다. 그런 펄프 픽션으로는 롤 플레잉 게임의 리플레이 소설 풍 판타지가 가장 인기를 글었습니다. 게다가 판타지 독자층은 아직 물리적인 연령으로도 피라미드 층을 이루고 있습니다. 판타지 독자의 전체 비율로 볼 때도 성숙한 사색과 성찰을 담은 판타지를 좋아하는 독자들의 수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 결과, 출판되는 판타지가 단조로워집니다. 웬만한 시장성 가지고는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에 전업 작가를 찾기 힘들어지고, 새로운 판타지를 쓰고 싶은 사람들은 시장에 진입하기 어려워집니다. 단순한 소망 충족 이상의 재미를 찾는 독자들은 계속해서 판타지 장르를 떠나갑니다. 그러므로 판타지에 대한 논의는 점점 희박해지고, 판타지를 읽어보지 않은 성인들은 판타지 소설을 펄프 픽션으로 여기고 ‘자식들에게 보여주지 말아야 할 소설’로 생각 합니다. 동호인 중 문학을 전공한 사람들은 거의 없고, 장르 판타지가 정착한 후 문학을 전공한 사람들은 이제 간신히 학부를 졸업했을 나이입니다. 잡지라는 외형적 틀이 존재 한다 쳐도, 주류 문학에 대응하거나 혹은 비슷한 질의 담론을 생산해낼 능력이 없습니다. 가장 나이든 동호인들이라 해도 기껏해야 30대 중반 정도입니다. 이들은 잡지를 운영한다거나 문학상을 제정할 재정적 기반을 갖지 못했습니다. 몇몇 판타지 문학상들이라고 있는 것들은 대부분 출판사의 지원을 받아 운영하고, 그나마 판타지 동호인들이 주축이 되어 심사하기보다 저 같이 양쪽에 약간 인지도가 있는 작가, 그리고 문학 평론가들이 심사를 하게 됩니다. 또 출판사가 재정적 뒷받침을 하므로 출판되었을 때 팔릴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단편 소설은 잘 팔리지 않으므로 당연히 판타지 단편 소설을 발표할 곳이 없고, 판타지 문학상에도 단편 부문이 없습니다. 장편 시장은 시장성이 없는 작가는 진입을 못합니다. 그러니 자기가 재능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판타지 작가들, 그리고 훌륭한 판타지 습작들을 읽었다고 생각하는 독자들은 상대적으로 과대평가 받고 있는 것 같은 주류 문학 쪽에 씁쓸한 적대감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판타지 작가들이 갈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요? 첫째로는, 저 같은 길을 갈 수 있습니다. 장르 판타지는 아니지만 환상적인 소재를 갖고 주류 문학에 합류해 글을 쓰고, 양진영간의 화해를 위해 꾸준히 노력하는 것입니다. 한국에서 가장 어린 하위 장르 소설인 판타지는 앞선 하위 장르 소설들의 성공과 실패에서 교훈을 얻어야 합니다. 그 중에서는 판타지 소설보다 더 잘 팔렸던 것들도 있고, 판타지 소설보다 이론적으로 더 높은 수준에 올랐던 것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중성과 이론의 균형을 맞추고, 주류 문학과 협력하고 경쟁하며 서로 전통과 혁신을 주고받을 수 있었던 장르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한국의 장르 판타지도 그런 모습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다만 아직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이 있고, 그러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한 가지 길이 주류 문학에서도, 장르 판타지에서도 일정하게 인정받는 작가가 되는 것입니다. 전례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작가 복거일씨의 <비명을 찾아서>(1987)은 리얼리즘이 가장 중요한 창작 이론으로 생각되던 때 씌어졌지만, 주류 문학에서도 SF 팬들에게도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런 작가들이 늘어난다면 판타지가 펄프 픽션이라는 평가를 벗어나는 것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리라 생각합니다.

 

두 번째는 판타지 소설의 다원화입니다. 고전이나 주류 문학과 맥을 교류하는 고급 판타지도, 모험담과 대중적인 판타지도 있어야 합니다. 대중에게 외면 받을지라도 단편 판타지나 실험적인 판타지를 꾸준히 생산해내는 작가들도 있어야 합니다. 문제는 생산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런 작품들이 대중과 연결 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행히 이런 시도를 하는 아마추어 작가들이 있고, 한국의 인터넷 환경은 상당히 뛰어난 편입니다. 그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글을 쓰고 그것을 자신들의 웹진이나 홈페이지에 무료로 올립니다. 재정적인 대가는 없지만 어차피 지금 판타지 작가로 입신해도 먹고 살기는 힘듭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글을 쓰고 독자와 교류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모든 작가의 기쁨일 것입니다.

 

다시한번 말씀드리자면 한국의 장르 판타지는 5년 밖에 안 된 어린 하위 장르입니다. 이 어린아이가 어떻게 커나갈지, 어떤 가능성을 발현시킬지 아직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재능 있고 판타지 창작에 애착을 가진 젊은 층이 있고, <드래곤 라자>와 다른 판타지들을 보며 자란 세대가 있습니다. 그 예비 작가군이 충분한 수련을 거쳐 자신이 쓰고 싶은 작품을 시장에 내놓을 때, 그리고 성숙한 독자들이 판타지에서 삶의 향기를 맡을 수 있을 때, 그때 우리는 한국 판타지의 모습을 다른 각도에서 다시 이야기 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1993년. 한영 판타지 문학 포럼 <판타지, 환상성 혹은 새로운 상상력>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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