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좋다고 하기엔 너무 작다고 할지 모르지만 그래도 고즈넉한 마당이 있는 2층짜리의 작은집 그곳의 하루는 오늘도 분주하다.
“호진아 내려와서 밥 먹어야지.”
한 여인이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호들갑이다. 얼마 되지 않아 작은 아이 하나가 쪼르르 달려와 작은 식탁에 앉는다. 아이는 불편한 듯 다리를 조금 전다.
“엄마는 조금 있다 일가야 하니까 점심은 알아서 차려 먹을 수 있지? 그리고 저번처럼 집 이곳저곳을 어지르면 안 돼. 할 수 있지? 밥 먹고 조금 있으면 닐리 아줌마가 오실거야. 말 잘 듣고 있어야 해. 알았지?”
짐짓 엄한 표정을 지으며 아이를 타이른다.
“응”
열 살 남짓으로 밖에 안 보이는 작은 아이는 짧게 대답한다.
3개월 전만해도 빈민가의 작은 아파트에 살고 있었지만 민 할머니의 도움으로 집을 빌릴 수 있었다.
그에 따른 소득이라면 전에 살던 빌라는 큰 아들 다니는 학교에서 멀어 자주 볼 수 없었는데, 가까이 이사를 하게 되어 예전과는 다르게 2주에 한 번씩은 기숙사에서 돌아오는 아이를 볼 수 있게 된 것이 가장 큰 소득이라 할 수 있었다. 게다가 몸이 안 좋은 호진이 학교를 다니진 못하지만 가까운 거리에 아이를 위한 큰 병원이 있는 것도 큰 장점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공짜로 빌린 것만은 아니었다. 민 할머니가 하는 호스텔([명사]여행하는 청소년을 위한 숙박 시설.)일을 도우며 갚아 나가기로 한 것이다. 의지할 곳 없이 타지 생활을 하게 될 호연에게 민 할머니를 소개한 것은 정 원사였다. 정 원사에게 그녀는 과거 월남에서 전사한 자신의 동기의 아내이자 친구였다. 호연이 미국으로 떠나고 2년7개월 정도가 지나갈 때쯤 오랜만에 걸려온 민 할머니의 전화로 연락이 닿았고, 가장 믿을 만한 사람이었기에 정원사는 당연하단 듯 가람의 식구를 그녀에게 부탁했다. 그녀는 가족이상으로 가람의 식구를 대했다. 월남전에 참전한 남편을 따라 먼 타국으로 왔다가 그가 전사하자 그녀는 고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남편의 작은 위로금과 뉴욕에서 갖은 일을 하며 모은 돈을 합해 호스텔을 만들었고 같은 한인들을 아끼고 도와 왔다. 비단 도움을 받는 이들은 한인뿐만이 아니었다. 유색인종들과, 미국인들도 그 대상이 되었고, 점차 그녀의 호스텔은 가난한 이들의 작은 안식처가 되어 주었다. 그녀는 그 지역에선 큰 엄마로 불리게 된다. 그녀는 가진 것 없는 자들의 어머니였고, 가람의 식구들에게도 그녀는 따뜻한 엄마였다. 그들 역시 그녀의 그늘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중 하나였다. 호연은 민 할머니를 생각하며 잠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것은 슬픈 미소였다. 자신의 어머니를 생각나게 한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몇 시간이지만 혼자 남겨질 호진을 보며 그녀의 표정은 안쓰러움으로 변했다. 그래도 처음엔 호스텔에 데려가 함께 있어 왔지만 일하는 곳의 환경 탓에 어느 날부턴가 호진을 집에 두고 나가게 되었고 호스텔 일을 하다가 알게 된 자원봉사자 닐리에게 잠시지만 호진을 맡기는 호연으로써는 언제나 안타깝고 불안한 마음뿐이었다. 얼마 안 있어 삼차 다리 수술도 해야 하기에 더욱 걱정이 큰 그녀였다. 그렇게 오늘도 그 둘의 조용하지만 바쁜 일상이 시작되었다.
5
미국이라면 어디서나 볼 수 있을법한 조금은 지저분한 승용차 안에서 수상쩍어 보이는 남자 둘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여자 하나, 아이 하나 맞지?” 덩치가 큰 남자가 작은 남자에게 묻는다.
“그래 동양인이라더군.” “두목이 왜 이런 일을 시키지?” “우리야 두목이 시키는 대로 처리하면 되지, 잘 들어 처음엔 소음기로 조용히 처리하고 우리가 나가기 전에 시끄럽게 두 발 갈겨주면 그 녀석들이 10분 안에 들이 닥치는 거야. 그리고는 별 다를 거 없는 일상다반사로 일처릴 해주는 거지.” “그게 그놈들이 받아 쳐 먹는 돈에 합당한 일거리지 뭐.” 뭔가 마땅치 않은 듯 인상을 찡그리는 덩치 큰 남자.
“아무튼 스티브 이번에는 최대한 조용히 하는 거야 저번처럼 시끄럽게 만들면 우린 끝이야 너도 들었잖아. 보스가 하는 말.” 작은 남자는 뭐가 불안한지 스티브를 보며 다짐을 받으려 한다.
“알아. 알아. 리노 하지만 아깝잖아! 동양여자 예쁠 거 같은데.” “안 돼. 알았어? 생각도 하지 마. 저번 같은 짓거리 하려다가 시끄러워져선 안 돼. 우리는 살짝 들어가서 푝~ 그리고는 일상으로 다시 조용히 나오는 거야. 명심해둬.” 리노는 안 돼 란 말에 힘을 주고는, 손으론 총 방아쇠를 당기는 흉내를 내며 스티브를 겨냥한다.
“알아. 알아.” 스티브는 리노의 손을 치우며 가져온 가방을 뒤진다.
“물건은 잘 챙겨왔지.” “그래” 그렇게 대화를 나누며 한 블록 떨어진 곳의 작은 집을 바라본다.
6
외부순환 2326번 버스정류장 앞
“휴~ 시차적응이 안 된다는 말이 뭔지 알겠구먼. 날씨도 한국이랑은 틀리고 몇 번 안와 봤지만 멀기는 먼 나라야. 매번 절실히 느껴지네. 게다가 왜 버스 뒤에 이상한 영문하나가 더 붙어 있어서 잘 못 타가지고는 아~ 시간만 낭비 했네.” 한국에서 미국은 먼 거리였고 비행기 값 만해도 부담이 커서 자주 오지 못했던 가람이었다. 가람은 투덜거리며 버스의 뒷문을 나선다.
“뭐 그래도 괜찮겠지. 이곳에 와서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야. 이곳은 자유의 나라니까 말이야.” 그렇게 말하며 맑은 하늘을 올려다본다.
이사를 온 가족들을 찾아 가는 건 처음이었기에 중간 버스를 한 번 잘못타 생각보다 늦게 도착한 그였다. 그는 주머니를 뒤적여 얼마나 만졌는지 색이 바래버린 집의 전경이 찍힌 사진을 한 장 꺼내 그 뒤에 적어둔 약도를 들여다본다. 그렇게 몇 분을 중얼거리며 걷다보니 이상하게 그려진 약도의 종착점인 녹색지붕의 작은집이 눈에 들어온다. 아직 좀 멀리 있는 집과 사진에 찍힌 집을 비교해 보니 사진에 찍힌 똑같은 집이다. 가람의 얼굴에 미소가 어린다. 아직은 좀 먼 거리였지만 그의 발걸음은 더욱 가벼워져 있다.
“히야~ 여기서는 작다곤 하지만 서울 같은 곳에서 저런 집하나 장만하려면… 어휴~ 꿈같은 일이지. 어?” 멀리 보이는 집을 보며 두근 거려하던 그의 표정이 의문 가득한 표정에서 이내 어두운 표정으로 변한다. 문 앞의 이상한 차림의 사내들을 본 탓이다. 그들이 입은 복장 보다는 얼굴에 신경이 쓰였다. 군대의 특임대나 할 법한 눈과 입을 제외한 나머진 모두 가려지는 시커먼 대테러모를 쓰고 있는 그들의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가람의 심장이 그리고 그의 다리가 뛰기 시작 했다.
7
“호진아 엄마 지금 나가니까 집 문 아무한테도 열어주면 안 돼. 알았지? 이따 닐리 아줌마 왔을 때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열어 드리고.” “응” 언제나 짧은 대답만을 하는 아이가 안쓰러웠다. 아이의 모습은 마치 어려서부터 아팠던 자신의 자매와 같아 더 가슴이 아팠다. 이런 천형의 굴레가 끈기지 않고 이어진다는 것에 호연은 더 가슴이 아렸다. 남편과 함께 있을 때는 이 정도는 아니었기에 남편이 더욱 그리웠다. 상념을 접고 나서려는 순간. "엄마." "응?"
-찌잉~~ 평소와는 다른 초인종 소리가 울려 퍼진다.
“이런 시간에 찾아 올 사람이 없는데 외판원인가?” 가끔 그런 일도 있기에 고개를 갸웃하며 문 쪽으로 다가서는 호연이었다.
“누구세요?” 영어로 물으며 다가갈 때
"엄마." "잠깐만 호진아. 누가 왔잖아."
-찌잉 "네~ 나가가요." "엄마. 오늘은 안가면 안 돼?" 호진의 말에 문 가까이 갔던 호연의 몸이 조금 틀어지며 문 근처에서 조금 멀어진 순간 "호진아. 무슨…"
-푸슉. 푸슉. 억눌린 신음소리를 내며 문을 부수고 들어와
“억” 호연의 입에서 억눌린 신음소리를 흘리게 한다.
“젠장 너 이 새끼.” 밖에서 거친 남성의 욕설이 터져 나온다.
호연은 무의식중에 호진을 보며 옆구리에 손을 가져다 댔다. 그 곳에서 흐르는 것은 아주 뜨거웠다. 아프다는 의식을 할 사이도 없이 아직은 거실에 있을 아이가 있는 쪽으로 기다시피 걸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터져 나오는 신음을 참으며 그녀는 오직 아이만을 생각했다. 그녀의 뒤에서는 연이어 문고리에 불똥이 튀며 김빠지는 소리가 난다. 소파 앞에서 아이는 호연의 비명을 들은 것인지 두려운 눈빛을 하고 굳은 듯이 서있다. 그 모습을 보자 호연은 옆구리를 쥐어짰다.
"흡." 그러고 나서야 그 고통으로 그녀는 아이가 있는 곳까지 뛸 수 있었다.
-쾅 거칠게 문이 열린다.
“젠장 아직 안 죽었네.” 땅에 떨어진 선명한 피 자국을 보며 시커먼 복면을 뒤집어 쓴 덩치 큰 사내가 욕을 내뱉는다.
“그러게 네가 아무 생각 없이 총을 갈겨대니까 그렇지.” 작은 사내는 화가 난 듯 소리를 지른다.
강도들이었다. 그것도 사람의 목숨을 미생물 정도로 여기는 살인마. 소파 뒤에 아이를 안은 채 숨 죽여 숨어 있는 호연은 절망 했다. 어찌 해야 할지 남들이 모두 좋다고 해주던 머리에선 전혀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았다. 단지 부르르 떠는 아이를 더욱 강하게 안았다. 지금은 단지 남편인 가람이 보고 싶다. 하지만 그는 먼 고국에 있었고 지금 그녀의 주변을 메워 오는 것은 뜨거운 피와 그에 못지않은 아이의 소변뿐이었다. 정말이지 붙잡을 것이 없다. 눈물이 난다. 영문도 모르는 아이는 피를 뒤집어 쓴 엄마의 옷깃을 더욱 강하게 잡아오는데 이 상황보다 비명조차 지르지 않는 여느 아이 같지 않은 아들이 더 안타까운 그녀였다.
피 자국을 따라 시선을 이동하던 두 사내가 동시에 소파를 응시한다. 그리고는 서로 얼굴을 마주보고 고개를 끄덕인다.
“빨리 끝내고 나가자.” 둘의 방아쇠가 소파를 향해 당겨지려는데
“으아아아아아” 괴성이 문밖에서 들려오고
“뭐야 이건.” 그 소리가 둘의 손가락을 잠시 방해한다.
“몰라 빨리 끝내야겠어. 뭔가 불안해.” 재차 방아쇠를 당기려 할 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