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하늘이 열리던 날.
상황은 쉽게 말해 최악이다. 아니 어렵게 말할 것도 없다. ‘누이’들 중 8할이 사망, 혹은 지금 당장 조치가 필요한 중상을 입고 있다. 말 그대로 ‘어라연히프제’는 괴멸된 상태이다. 아직 전멸까진 가지 않았으나, 이정도의 타격만으로도 앞으로 약 10년간은 이들의 재림이 불가능 할 것이다. 갑작스레 눈앞이 어그러져서 눈가를 비볐더니 물방울이 묻어났다. 중학교에 입학하기 전. 초등학생으로써 마지막 크리스마스에 난 무엇을 맹세했는가. 최악이다 한태운, 너는 지금껏 살며 스스로에게 한 약속도 하나 지키지 못하는 남자가 되었구나. 하지만 마지막 약속 정도는 죽어가며 지킬 수 있다. 남은 이들. 이제 열아홉 명 안팎인 소수 인원들이지만 이들은 모두 대장급으로, 아직까지 사지 온전히 살아있는 전사들이다. 이들에게 부탁한다면 적어도 최대한 살릴 수 있으리라. 적들은 날 노리고 있으니, 굳이 이들을 쫓아가진 않을 것이다.
“한혜림, 있습니까?”
“하. 흠. 흠! 예, 옛! 대장 한! 혜! 림! 충성! 근무 중!”
“관등성명은 됐습니다. 다 알고 있잖아요? 이제부터 제가 하는 이야기는 평소처럼 ‘부탁’하는 것이 아닙니다. ‘명령’하는 거예요. 알겠어요?”
“네!”
“그럼 좋습니다. 지금 이 시간을 기해서... 핫!”
갑작스레 덮쳐오는 용병 하나를 발로 찍어 쓰러트렸다. 컨디션이 정상일 때엔 한방에 건물 담벼락도 무너트리던 발차기다. 아무리 상처를 입었어도. 인간의 머리정돈 이렇게 쉽게 부서지고 마는 것이다.
“계속하죠. 지금 이 시간을 기해서 어라연히프제는 해산합니다.”
“네!.... 예?”
“어라연히프제는 해산한다 말했습니다. 한혜림 양. 아니, 누이. ‘전’ 대장으로써 직위에 부탁하진 않을게요. 제발 다른 다친 누이들을 이끌고 이곳을 이탈하세요.”
“그, 그렇다면 공자님은?”
“저는···. 끝을 내겠습니다. 누이, 제 명령을 기억한다면 떠나세요.”
“하지만······.”
“누이! 다른 누이들과 함께 이곳에 뼈를 묻을 심산이십니까? 최대한 많은 누이들을 이끌고 본가에 재집결하십시오. 그리고 구조 요청을 하세요! 전파방해가 있는 이 지역에선, 밖에 연락하는 수단은 그 뿐인 것을 알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차라리 공자님이 이탈하십시오!”
“지금 ‘한시’에게 전장에서 등을 돌리란 말입니까?”
“아···. 하, 하지만!”
“명령입니다! 명령이라구요! 살아남으십시오! 반드시 살아서 본가에서 봅시다! 모든 어라연히프제에게 알립니다! 살아남아서 후일을 기약하세요! 본가로 뜨십시오. 곧 따라가겠습니다!”
다시금 여러 명의 용병들이 한번에 달려 왔다. 처음 달려오는 셋을 주먹을 휘둘러 으깨고 나머지 하나는 뒤로 올려 쳐 쓰러트렸다. 이걸로 일단 잠잠해 지나? 주변에서 명령받은 누이들이 한꺼번에 빠져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좋아. 이걸로 됐어. 하찮은 영웅놀이라 한다면 반론할 수 없지만 이걸로 좋아······. ‘한시’들은 언제나 힘든 싸움만을 이겨왔으니까. 이번 싸움에서도 이겨서, 저 빌어먹을 자식에게 죽은 누이들의 복수를 해야 해. 복수를!
“어디에 있느냐 한태설! 이제 끝을 보자아앗!”
싸늘한 겨울 밤, 거리에 바람이 불었다. 여느 크리스마스와 다를 바 없는 활기찬 크리스마스, 게다가 무려 화이트 크리스마스이기까지 한 이 날은, 내 인생에 종지부를 찍을 날이기도 하다. 바람이 불고, 눈발이 흩날린 후. 약간의 공백이 있었지만, 이윽고 녀석의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한시의 오점. 최악의 ‘한시’. 내 동생······. 한태설의 목소리가.
“그것도 좋겠지.”
눈발을 해치고 나타난 녀석은 정장 차림이었다. 허리춤에 꽂아 놓은 검의 존재만 제한다면 당장 사교 파티에라도 참가할 것 같은 차림이다. 하지만 녀석의 눈은 더 없이 싸늘하다. 온 몸이 만신창이가 된 내 모습과는 달리 녀석은 심지어 눈조차 쌓이지 않은 말끔한 차림으로, 당장이라도 날 찢어 죽일 것 같은 날카로운 눈을 한 채로 다가왔다. 역시 썩어도 준치라는 말이 맞나 보군, 전장의 신이라 불리던 한시의 자손답게. 녀석도 최전방에서 싸우는 전사의 눈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꼴로 나와 싸우겠다고?”
“널 죽여 버리는 데엔, 한 팔만으로도 충분해.”
“···대단한, 자신감이로군.”
“자신감이 아냐. 확신이다.”
“어느 쪽이든 좋아. 난 네 녀석을···.”
“그래, 나 또한 네 녀석을···.”
잠시 쉬며 서로를 노려보았다. 한시의 눈빛은 궁사의 것이 아니다. 동중한가는 대대로 궁술 가문이지만, 동시에 호국무술이다. 적을 격퇴하는 것이 아닌, 적을 물러서게 하는 기능을 짙게 갖고 있다. 그런 동중한가의 모든 무술들을 모아 집대성한 것이 ‘한시 - 가문 직계.’ 이들이 전투 중에 뿜어내는 기운과 눈빛은 후방에서 활을 쏘는 궁사의 것이 아니다. 전방에서 적과 피로 피를 씻는 자들도 물러설 법한 그런 눈빛이다. 하지만 그 눈빛은 오직 ‘한시’에게만 통용되지 않는다. 그러니 이렇게 노려보는 것은··· 오직 상대방을 죽이고 말겠다는 의지의 발현이다.
“찢어주마아아아앗!!”
그와 동시에 내 주먹과 녀석의 검이 뒤로 튕겨 나갔다. 소름끼치는 짧은 순간의 공방. 내가 가진 최고의 일격을 막아낸 것은 확실히 ‘한시’의 능력이다. 하지만 녀석도 멀쩡하진 않을 것이다. 주먹과 칼이 엉킨다. 물론 주먹 쪽이 압도적으로 불리한 공방의 연속이지만 반드시 밀리진 않는다. 이쪽은 5년간 길바닥 싸움판에서 전전하던 싸움꾼, 칼을 들고 설치는 녀석쯤은 가볍게 이겨 버릴 수 있는 관록이 된다.
“핫!”
목을 틀어 찔러 오는 검을 피했다. 동시에 어깨로 칼등을 쳐 올린 후 들어올린 오른 팔을 그대로 찍어 내렸다. 하지만 헛손질이다. 주변에 날리는 눈을 그대로 주먹으로 빨아들일 정도로 강렬한 풍압을 일으킨 일격이지만 녀석은 간신히 피하고, 곧장 내 빈틈으로 튕겨져 올라간 검을 그어 내렸다. 왼팔을 살짝 긁히고 피했다. 이후 한 발짝 빠지고 허리를 굽혀 위로 올려 쳤다. 빗나갔다!
“쳇!”
피하려니 검이 날아온다. 심장을 노린 녀석의 검을 허리를 돌려 빗기고 어깨에 넣어 잡았다. 그리고 녀석이 반응하기 전에 뒤로 빠지며 녀석을 유도하고······. 비어있는 오른 어깨로 올려 쳤다!
“컥!”
근육에 힘이 빠져 타격이 올바르게 들어가지 않았으나, 어쨌든 일격을 넣는 것에 성공했다. 한번 공격을 허용한 녀석은 두 번, 세 번도 맞아 주는 법이다. 녀석이 균형을 잡기 전에 턱에 왼팔 스트레이트를 먹여 줬다. 비명 지를 세를 주지 않는다! 뻗은 주먹을 세워 녀석의 어깨로 내려 긋고, 동시에 오른 주먹으로 녀석의 턱에 한방 꽂았다. 이후 한바퀴 돌리며 팔꿈치로······. 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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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참합니다! 사실은 연참이라기 보다는 그냥 있는 비축분을 한타에 몰아 올리는 겁니다만..;; 뭐어... 그래도 보실 분은 보실테니
아. 비축분 다 올리면 다음 편은 조금 늦게 올라갑니다. 제가 요즘 살짝 바빠서요.;; 죄송합니다.
그나저나 글시체는 테호마 (Tahoma ; 라 읽는 것이 맞나?) 가 가장 적절하군요. 어, 어프로프리시에이트... 죄송합니다.
-Gaway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