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순간, 세상이 천천히 회색으로 물들어 가기 시작했다. 하늘을 감싼 거대한 회색 구름이 세로로 쪼개지고 회색 하늘과 회색 돌덩어리가 눈에 들어왔다. 그 거대한 일색의 홍수에서 천천히 물감 퍼지듯 색이 번져가고, 이윽고 눈에 보이는 모든 장소가 회색으로 물들었다. 내리던 눈이 그대로 하늘에 멈춰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어어..?”
끔찍한 고통이 농담처럼 사라졌다. 실제로 상처가 나은 것은 아니라서 거동할 순 없지만 적어도 고통은 사라진 것 같다. 아니, 조금 더 냉정히 보자면 저 하늘을 날고 있는 거대한 회색 바위가 나타날 때 즈음부터였던가? 죽음이 더 이상 진행되지 않고 있다. 육체가 점차 낫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죽어가는 것도 아닌 느낌이다. 물론 온 몸의 감각은 여전히 제로······. 그런 주제에 하늘의 바위만큼은 정말 아름답다고 감탄 하고 있다.
“하늘에··· 떠 있는··· 바위라······.”
마지막 숨이 주는 아름다운 상상이라 해도 감미롭다. 이후 아마도 기다리고 있을 지옥에 대한 위로인가. 더 이상 진행되지 않는 상처라 해도 피를 너무 쏟아 내었기 때문에 정신이 하나도 없다. 여기저기가 일그러져 보이고 있다. 그런 것들을 모두 무시하며 하늘만을 응시하자, 궁수로써의 본능이었는지 하늘의 건축물과의 거리가 미터 단위로 느껴진다. 의외로 놀랍도록 멀리 있는 바위다. 아마 그 크기가 너무 거대해 이런 먼 곳에서도 크게 느껴지는 것이 아닐까. 참 이것저것 현실적인 망상이다. 이제 슬슬 깨어 주었으면 좋겠는데··· 나라고 계속 이렇게 살고 싶진 않으니.
“그나저나, 이제··· 갈 곳은··· 지옥뿐인가······?”
“어떤 의미에선.”
순간, 아무도 없던 회색 공간에서 한 여자가 튀어 나왔다. 아니 정정하자면, 나타났다. 정말 그저 그곳에 계속해서 존재했다는 듯한 현실적인 존재감을 뿌리고 있는 그녀는 내가 그녀를 바라보는 시선이 재미있었는지 피식 웃었다. 그 순간, 엄청난 위압감이 그녀에게서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녀는 그 날카로운 아름다움으로 그것을 인식한 상대에게 마력적인 카리스마를 흘렸다. 그녀와 함께라면 무엇이든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 좋은 고양감에 온 몸이 떨려 온다. 사법의 일종인가? 아니, 그런 사악한 느낌이 아니다. 이건 마치 천상의 영위를 느끼는 기분······.
“저승사자 인가?”
“그것 역시······. 어떤 의미에선.”
그녀는 후, 하고 살짝 웃더니 주변으로 손을 휘휘 저었다. 그것만으로도 놀라울 정도로 몸이 편해졌다. 이제 끝인가··· 정말 이대로 죽는 건가··· 지금 내 정신력이 이렇게 놀라울 정도로 바른 것은 아마 지금이 내 생의 마지막 촛불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후 내게 남은 것은 별반 선량한 행위를 저지르지 않은 내게 남은 것은······. 지옥뿐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대로도 좋은가? 몸이 나아지니 이런저런 잡생각이 든다. 물론 잡생각일 뿐이니 얼마든 해도 좋을 테지만··· 그래도 미련이 남는 것은 사실이다. 헬레나 양. 그녀와 약혼식을 치룬 이후에 단 한번도 변변한 데이트를 함께 즐긴 적 없었다. 워낙 서로 가문 일로 바쁘기도 했고 원거리 연애이기도 했지만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했음에도 그녀의 웃음을 봐 준 것이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그것이 너무 한스러워서 이대로는 가지 못할 것 같다. 내가 떨어지는 곳이 지옥이라면 영원히 그녀와 다신 만날 수 없을 테니······.
“헤에, 너 살고 싶지?”
“······묻는 의도가 뭔지 모르겠지만 그렇소. 살고 싶어 미칠 지경이지.”
“그럼 말이지. 나랑 같이 갈래?”
“당신이 저승사자라면 같이 가 봤자 죽는 것은 매한가지일 텐데?”
“아니지 아니지, 난 아직 한번도 내가 저승사자라고 단언한 일이 없는걸?”
“그럼 악마라도 된단 말인가?”
“······ 비슷해.”
그녀는 씨익 웃더니, 누구라도 유혹할 수 있을 매력적인 미소를 얼굴 가득 띄우고 다가왔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느낌이지만··· 애초에 움직일 수 없으니 뭐 어떻게든 되겠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그녀가 내게 다가와 허릴 숙였다. 머리칼이 스르륵 내려가자 뭔지 모를 향기가 물씬 풍겨왔다. 그 향에 취해 있을 때 그녀가 내 귓가에 속삭였다.
“그럼말야, 너··· 내 부하가 되라.”
“살려만··· 주신다면야.”
그녀는 방금 전의 그 행동이 환상이나 되는 것처럼 어느새 멀리 떨어져 피식 웃었다. 그녀가 입고 있는 코트가 바람에 펄럭이고, 바람이 가라앉자 그녀의 입에서 ‘언어’가 튀어 나왔다.
“대마법사 멀린님께서 하시는 일에 실패란 없을 지니. 그대의 소원, 이루어져라.”
그 말과 동시에, 숨이 턱 막힐 엄청난 고통이 엄습해 왔다. 시간이 멈춰 있는 회색 공간이 서서히 본연의 색을 찾아 가고, 하늘의 틈새가 다시 메워졌다. 그 사이로 어렴풋이 보이던 거대한 바위는 이제 사람들의 공상 속에서나 존재할 마냥 사라져버렸다.
“하···하···하!”
너무 숨이 가빠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지금 내가 숨을 쉬고 있는 것인지 웃고 있는 것인지 확실하게 잡히지 않는다. 하지만 기분은 매우 유쾌하다. 어쨌든 삶을 보장받았던 것이다. 물론 그것은 내가 죽기 직전에 한 망상 속에서나 이루어진 일이라 해도··· 충분히 위안거리는 되었다. 하지만 멀린이라니··· 내가 주워들은 것이 이것저것 많기도 하다. 눈이 완전히 감기기 전, 아직 망막에 어렴풋이 남아 있는 그녀의 잔상에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어쨌거나 이제 주인님이니··· 존대를 사용해야··· 하겠지······.
“···그렇다면··· 저의 목숨은··· 당신의 것···입니다. 영원···한 충성을··· 다, 당신에게. 허억.”
더 이상 눈꺼풀의 무게를 견디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을 때, 닫혀가는 구름 사이에 보이는 커다란 보름달이 머릿속 깊숙이 각인 되었다. 그나저나 오늘이··· 보름달이··· 뜰 때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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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비축분을 탕진했습니다. 축하해주세요.
이제 남은건 재회.. 뿐일텐데요.. 뭐.. 어쩌갰어요. 이걸 그대로 올리면 엄청난 폐가 될텐데요.
그럴순 없겠죠? 제회는 다시 쓰렵니다. 수정하기엔 조금 벅차군요.
아무래도 제가 아일랜드에 가본 적이 없다는게 크게 작용하는군요..;; 구글 어스로는 조금 무리가 옵니다.
물론 아일랜드에 가보셨다는 분의 말씀을 자세히 듣고 그대로 묘사하려 노력합니다만.. 솔찍히 아직도 웩스퍼드와 인천의 차이를 모르겠습니다..
단지 웩스퍼드가 조금 더 커보이는 도시라는거? 으음.. 크기차이는 무의미하나?
-GaWay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