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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르에 있어 게임이라는 미디엄(medium)이 가지는 의미> - 홍인수

 

 

 

SF라는 장르를 표현하는 미디엄(수단/매체/방법)은 소설도 있지만 만화, 영화, 게임 등 다양한 미디엄이 존재한다. 특히 이 중에서 게임은 SF적 장치가 꽤 많이 쓰이는 미디엄이면서도 장르 정체성이 가장 약하다고 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스타크래프트를 즐기고 프로리그가 운영되고 있지만, 스타크래프트를 SF로서 인지하고 플레이하거나 경기를 시청하는 사람은 지극히 소수이다. 게임은 그 특성상 플레이 과정에서 SF라는 장르 인식을 크게 하지 않아도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본 글에서는 이렇듯 소비자의 장르정체성이 가장 약한 게임이라는 미디엄에 어째서 SF라는 장르의 이름을 붙일 수 있는 것인지, 또한 SF의 구현에 게임이라는 미디엄의 특성은 어떤 영향을 주는지 살펴 보고자 한다.

 

 

게임은 하는 이에게 다양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이러한 즐거움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상상의 시각적 구현과 체험이라는 부분은 게임이 주는 본질적인 즐거움이라고 할 수 있다. 초기의 움직이는 도트 단계에서 벗어난 이후, 게임은 수많은 상상을 모니터와 TV를 통해 구현했다. 새삼스러운 말이지만 컴퓨터 하드웨어가 발전하면서 과거에는 구현하기 어려웠던 부분까지도 이제 게임에서 볼 수 있게 되었다. 사실적인 그래픽은 물론이고, 물리엔진을 통한 게임 내 사물들과의 보다 현실적인 상호작용을 가능케 한 게임들이 속속 출시되고 있다. 예를 들어 볼리션 스튜디오에서 개발한 3인칭 액션 게임인 <레드 팩션(Red Faction)> 시리즈는 지오모드(Geo-Mod)’라는 물리엔진을 사용하여 대부분의 게임에서 파괴 불가능한 물체였던 건물을 게이머가 마음껏 부술 수 있게 하였다. 게임 내에서 건물은 단순하게 부서지는 것이 아니라, 파괴 방법, 피해를 받는 부분, 건물의 구조 등에 따라서 매우 현실감 있게 무너진다. 테라포밍된 화성을 배경으로 하는 이 게임에서 건물의 파괴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매우 중대한 수단이 되며, 게이머는 보다 효과적으로 건물을 파괴하고 빠져 나오기 위한 전술을 짜야 한다. 요컨대, 기술이 발전하면서 게임에서 구현할 수 있는 상상과 체험의 범위는 계속해서 확장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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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의 시각화와 체험이라는 게임의 본질은 필연적으로 SF와 깊은 관계를 맺게 된다. SF는 변화, 특히 과학기술로 인한 변화에 중점을 두고 변화 그 자체 또는 그 효과를 그려내는 장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그 전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어떤 것의 출현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므로 당연하게도 상상을 동반하게 되며, 이러한 상상의 구현은 SF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상상의 구현 과정에서는 문학적 요소가 개입되게 되며, 최소한 SF소설에서 문학적 질이 충족되지 않은 채 상상에만 치중한다면 그것은 잘 쓰인 SF라 할 수 없다). 해양생물학자이자 SF 작가인 피 터 와츠(Peter Watts)는 그의 전공 분야를 살려 심해를 배경으로 하는 단편 틈새와 그 장편 개작인 <Starfish>를 썼다. 이 작품의 근간을 이루는 변화는 심해 건축 기술의 발달생체 개조 기술의 발달이며, 이를 바탕으로 심해저 발전기지와 그 곳에서 잠수장비 없이 일할 수 있는 일종의 개조인간을 만들어냈으며, 심해라는 우주 못지 않은 기괴한 장소를 배경으로 이들을 배치하였다. 그러나 피터 와츠는 이 같은 독특한 상상에 그치지 않고, 이런 극한 환경과 신체의 변화가 인간에게 미칠 수 있는 다양한 영향들을 훌륭하게 문학적으로 그려냈다. 이처럼 SF는 변화의 출현과 그 파급 효과에 대한 상상과 문학적 장

 

치가 결합하여 완성되는 것이다. 그리고 상상의 구현을 근간으로 하는 SF라는 장르의 특성상, 게임은 그 구현을 위한 훌륭한 미디엄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영화 역시 상상의 시각화와 체험이라는 측면에서 무시할 수 없는 위력을 가졌다. 그러나 영화와 게임의 시각화와 체험은 질적으로 큰 차이가 있다. 영화의 시각 컨텐츠가 관객에게 일방적으로 전달되는 것이라면, 게임은 상호작용이 가능한(interactive) 특성상 게이머의 플레이에 따라 시각화가 구현되는, 매우 동적이며 개인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스페이스 오페라의 백미라 할 수 있는 함대전 장면을 생각해보자. 소설에서는 작가의 문장을 통해 상황이 묘사되며, 독자는 각자가 가진 이미지를 동원하여 그 장면을 상상하게 된다. 시각화가 되지 않은 텍스트 묘사라는 측면에서, 읽는 이의 주도권은 어느 정도는 존재하게 되나, 기본적으로는 소설의 내용을 따라가게 된다. 반면 영화의 경우, <스타워즈 EP3>나 인기를 끌었던 미국 드라마인 <배틀스타 갤럭티카>와 같은 영화에서 함대전은 훌륭하게 시각화되었다. 이런 작품들은 훌륭한 CG와 물량, 또는 물량을 극복하는 훌륭한 카메라워크와 연출 등으로 박진감 넘치는 함대전 장면을 시각화했으나, 이 경우 관객의 주도권은 사실상 0에 가깝다. 보여주는 것 이상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며, 무엇을 보여줄 것인지는 사전에 이미 모두 결정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게임의 경우는 사정이 완전히 다르다. 함대전이 등장하는 주요 게임 장르인 RTS(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 플라이트 시뮬레이션에 속하는 게임들의 경우, 화면에 구현되는 전투 장면은 전적으로 게이머의 의사에 달려 있다. 예를 들어 유폐와 고난의 길을 통한 고향으로의 복귀라는 전형적인 포스트 엑자일 스토리를 훌륭하게 그려낸 3D RTS의 명작인 <홈월드 (Homewolrd)> 시리즈에서, 게이머는 어떤 전투함들을 뽑아 어떤 전술을 사용하여 고향인 히가라(Higara)로 돌아갈 것인지 결정을 내리게 되며, 게임의 진행과 연출은 거의 대부분 이러한 게이머의 결정에 기반하여 이루어진다. 스토리 진행을 위한 몇몇 이벤트 장면을 제외한다면, 홈월드에서 볼 수 있는 우주와 제국, 반란군의 함대전이라는 전형적인 스페이스 오페라의 요소들은 게이머의 의사에 따라 시각화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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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이라는 측면에서도 영화와 게임은 차이를 보인다. 스타트렉과 같은 오버테크놀로지의 세계에서는 홀로그램 기술이 극한으로 발전하여 영화가 곧 게임이 되고 이 모두가 현실이 될 수 있지만, 아직까지 21세기의 지구에 그러한 기술은 없다. 따라서 영화와 게임 모두 간접 체험이라는 한계를 지니게 되지만, 영화의 간접 체험과 게임의 간접 체험은 질적으로 큰 차이가 있다. 앞서 언급했던 상호작용성으로 인해, 게임의 간접 체험은 게이머에게 보다 많은 주도권을 선사한다. , 게이머의 결정에 따라 이루어지는 동적 시각화라는 게임의 특징은 관람이라는 영화의 특징과는 전혀 다른 것이며, 이를 통해 게이머들은 보다 능동적이고 개인적인 차원에서 SF의 세계를 체험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폴아웃 (Fallout)> 시리즈는 핵전쟁 이후의 세계를 그린 RPG, 게이머는 핵전쟁 이후의 황폐화된 세계를 탐험하며 인공적인 대파국인 핵전쟁이 가져온 다양한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해야만 하며, 이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핵전쟁 이후라는 SF의 고전적인 주제를 체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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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임은 소설과 영화와는 달리, 사용자/관객/독자가 게이머가 되어 능동적이고 자기주도적으로 SF를 실체화하고 그것을 체험할 수 있는 미디엄이다. 또한 게임은 상상을 시각화하여 체험할 수 있게 해 주므로, 상상이 핵심이 되는 장르인 SF구현에 매우 적합한 미디엄이며, 그 내용이 SF의 정의에 부합한다면 비록 게이머가 인지하지 못한다 할 지라도 그 게이머는 SF를 즐기고 있는 것이며, 해당 게임은 SF게임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게임은 근본적으로 몇 가지 한계점이 있다. 비단 SF게임 뿐 아니라 많은 게임들이 지니는 문제로, 소설과는 달리 이야기그 자체를 즐길 수 있는 게임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수많은 게이머들이 스타크래프트를 즐기지만, 정작 그 스토리를 알고 있는 게이머들은 소수이다. 이는 대부분의 게이머들이 스토리를 즐기는 싱글 플레이보다 네트워크를 통한 멀티플레이에 더 중점을 두기 때문이며, 이런 추세는 개발사에도 영향을 줘 <퀘이크 (Quake)>와 같은 게임의 경우는 극단적으로 개발 단계부터 싱글 플레이는 그저 멀티플레이를 위한 연습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이런 멀티플

 
레이의 강세는 SF 장르가 많이 이용되는 RTS FPS(일인칭 슈팅)에서 특히 심하다. 물론 인터넷에서 진리라 불리는 <바이오 쇼크 (Bio Shock)>, 진리를 넘어 아예 헤느님이라 불리는 <헤일로 (Halo)> 시리즈, 대중적인 인기를 끌지는 못했지만 명작으로 꼽히는 <홈월드>처럼 멀티뿐 아니라 싱글플레이와 거기서 구현되는 이야기가 주목을 받는 경우도 있지만 소수에 그친다. 다만 RPG의 경우는 장르의 특성으로 인해 반드시 이야기가 구현되어야 하므로 이러한 문제점에서 어느 정도 자유롭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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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상호작용성과 시각화라는 게임의 본질적인 특성 자체가 한계를 만드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독자로부터의 피드백을 거의 고려할 필요가 없는 소설과는 달리, 상호작용성이 없는 게임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게임에 적합한 SF컨텐츠는 SF장르 전체의 스펙트럼 중에서 일부분으로 한정된다. 예를 들어 자폐인 주인공의 시선에서 정상과 비정상의 문제를 다룬 훌륭한 SF <어둠의 속도>를 게임으로 만들 수 있는 게임 제작자는 아마 없을 것이다. 혹자는 루의 시선에서 세상을 탐험할 수 있는 어드벤쳐를 만들면 되지 않냐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이것은 단순한 상호작용성의 구현일 뿐 <어둠의 속도>의 주제의식을 담아낼 수도 없고, 게임으로서도 가치가 없는 프로그램이 되고 말 것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게임은 SF를 즐기는 데 더할 나위없이 적합한 미디엄이라 할 수 있다. 앞으로도 더 많은 사람들이 게임을 통해 SF의 진정한 재미를 체험하고, SF만이 줄 수 있는 경외감을 느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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