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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과학소설 100년의 회고 - 우리는 SF를 어떻게 받아들였나>

 

박상준 (서울SF아카이브 대표)


2007년 초. 잡지 <판타스틱>의 창간 준비로 한창 분주하던 때지만, 마음 한 구석에서는 그전부터 벼르던 프로젝트 하나를 어떻게 하면 구체화시킬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맴돌고 있었다. ‘한국 과학소설 100년’을 그냥 흘려보낼 수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마침 문학과지성사에서 새로 연 ‘문지문화원 사이’와 얘기가 잘 되어 개관 기념 이벤트로 ‘한국 과학소설 100년’ 전시회를 열게 되었다.


1907년부터 2007년까지, 한국 과학소설 100년이라. 많은 사람들이 묻는다. 정말 1907년에 우리나라에 과학소설이 나왔냐고.

 

 

 

 

대한제국, 과학소설의 세례를 받다

 

 

 

 

1907년은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말로 쓰인 과학소설이 처음 선을 보인 해이다. 현재까지 밝혀지기로는 1907년에 일본 동경에서 한국인 유학생들이 내던 잡지 <태극학보>에 쥘 베른의 <해저 2만리>가 <해저여행기담>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실린 것이 우리말로 된 최초의 과학소설 기록이다.

 
과학소설(Science Fiction)의 탄생은 서양 모더니즘의 가장 뚜렷한 증거 중의 하나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급격하게 발달한 과학기술과 그로 인해 새롭게 나타는 사회상의 변화. 바로 그 변화의 바람이 한반도에도 예외 없이 불어왔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 변화의 실체는 과연 무엇일까?


여러 가지 의견이 있겠지만, 인류 문명사적으로 볼 때 제일 의미심장한 것은 바로 과학기술의 발달 속도가 질적으로 달라졌다는 점이다. 20세기까지의 인류 역사에서 과학기술은 정적인 요소에 가까웠다. 예를 들어 삼국시대나 조선시대나 농사를 지을 때 소를 몰아서 밭을 간다는 방법은 변함이 없었다. 두 시대는 1,000년이 넘는 세월의 간격이 있지만 과학기술이 사람들의 실생활에 근본적인 변화를 주진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조선시대로부터 불과 일이백년 뒤에는 경운기라는 기계가 나타나 소를 대신하게 되었다. 19세기 전후로 서양에서 싹튼 산업혁명이 과학기술의 급속한 발달을 가져와서 순식간에 지구 전체의 생활상을 바꾸어놓은 것이다.


 

그 결과 20세기를 산 사람은 역사상 가장 극적인 체험을 하게 된다. 서기 1900년에 태어나서 1970년에 죽은 사람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그가 태어났을 때에는 아직 세상에 비행기라는 것이 없었다. 라이트 형제가 세계 최초의 비행기를 만들어 낸 것은 1903년의 일이므로. 그런데 그가 죽은 1970년에는 이미 인간의 발자국이 달에 찍혀 있었다. 아폴로 우주선이 달에 간 것은 1969년의 일이니까. 한 인간의 일생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이렇게 엄청난 과학기술적 변화를 겪은 세대는 인류 역사상 유례가 없었다.

 

이렇듯 인류 역사에서 20세기 이전은 정체된 과학기술의 시대, 그리고 그 이후는 역동적인 과학기술의 시대로 구분된다. 그리고 중간에 낀 20세기야말로 변화의 혼란 속에서 적응하려고 애 쓴 인류의 시대로 기록될 것이다. 그 적응하려는 시도 중의 하나로 탄생한 것이 바로 과학소설이다.

 

과학모험담의 선구자 쥘 베른

 

영국 신사들이 모여서 얘기를 한다.

 

‘세계 일주하는데 얼마나 걸릴까?’

 

 

‘글쎄, 한 100일 정도?’

 

 

그때 한 사람이 말한다.

 

‘80일이면 충분해.’

 

그러자 다들 믿기 힘들다며 반론을 펼치고, 결국 그들의 논쟁은 내기로 발전된다.

 

‘정말 80일 만에 세계 일주가 가능한지 어디 직접 해 봐라!’

 

발달된 과학기술에 힘입어 여러 가지 문명의 이기들이 등장하는 전혀 새로운 형태의 모험담. 프랑스 작가 쥘 베른은 바로 이런 새로운 분야를 창시해 낸 인물이다. 위에서 소개한 이야기는 그 유명한 <80일간의 세계일주>(1873)로서, 기차나 기선 등 새로운 교통수단이 등장한 결과 세계 일주에 80일이면 충분한 세상이 되었다는 점을 소설로 묘사한 것이다.


 

쥘 베른은 그밖에도 <해저 2만리>(1870), <기구를 타고 5주간>(1863), <지구에서 달까지>(1865) 등 새로운 유형의 과학모험담을 많이 발표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 가장 먼저 소개된 것도 바로 쥘 베른의 소설들이었다.


 

해저여행기담>>>66해저여행기담2.gif

 

앞서 언급했다시피 1907년에 <해저여행기담>으로 번역된 <해저 2만리>를 필두로, 이듬해인 1908년에는 회동서관에서 <철세계>라는 책이 출간되었다. 이 작품은 쥘 베른이 1879년에 발표한 <인도 왕비의 유산>이라는 장편을 우리말로 번안한 것이다. 당시 번안자는 신소설의 개척자로 유명한 이해조였다. 한편 또 다른 신소설 작가인 김교제는 1912년에 동양서원에서 <비행선>이란 번역소설을 냈다. 이 책은 베른의 <기구를 타고 5주간>을 옮긴 것이다. 그런데 이 최초의 우리말 과학소설들은 단순히 과학기술이 새로운 문명의 이기들을 낳는다는 계몽적 차원에만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니었다.

 

철세계>>>20철세계2.gif 21비행선1912한국번역2.gif <<비행선

 

<철세계>에는 좌선과 인비라는 두 선비가 나오는데, 좌선은 과학기술의 힘으로 생명공학을 발전시켜 장수촌을 건설하려는 반면, 인비는 철강, 기계 산업에 매진하여 강력한 무력으로 세상을 통제하겠다는 야심을 가졌다. 두 사람 다 과학의 힘으로 세상을 더 나은 모습으로 바꾸어보겠다는 포부가 있었지만, 그 방법론은 서로 달랐던 것이다. <철세계>에서 인비의 야망은 결국 실패하고 만다.

한편 노틸러스라는 잠수함과 네모 선장이 등장하는 <해저 2만리>도 단순한 모험담은 아니다. 네모 선장은 강대국에게 핍박받는 약소국 출신으로서 복수를 꿈꾸며 노틸러스호를 이끌고 있다. 과학기술의 발전이 장차 정치적으로 큰 위협수단이 될 수 있음을 이미 그 당시에 내다 본 것이다. 그런 점에서 <태극학보>에 연재되던 ?해저여행기담?이 완결을 보지 못하고 도중에 중단된 것은 아쉬운 일이다. 독자들이 이 이야기의 끝을 접할 기회가 없었으니까.

 

 

 

100년 뒤 오늘의 한국 과학소설은?

 

세계적인 미래학자인 앨빈 토플러는 일찍부터 과학소설의 미덕이 무엇인지 잘 인식하고 있던 사람이다. 그는 1970년에 낸 책 <미래쇼크(Future Shock)>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학생들에게 역사 과목을 가르치면서 왜 '미래학'과목은 없는가? 우리가 지금 로마의 사회 제도나 봉건시대 장원의 대두를 탐구하듯이 왜 미래의 가능성과 개연성을 체계적으로 탐구하는 과목은 없는가? SF를 문학작품이 아니라 일종의 미래사회학이라고 본다면 그것은 예측의 습관을 길러내는 정신확장력으로서 엄청난 가치를 지닌다. ... SF는 ‘미래의 나’를 위해 읽혀져야만 한다.’


 

(필자는 기회 있을 때마다 위의 토플러 발언을 인용하기 때문에 아마 또 이 소린가 하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국민 모두가 이를 인식하고 납득할 때까지’ 줄기차게 역설하고 싶다.) 토플러가 위와 같이 역설한지 40년이 다 되어 가지만, 여전히 우리는 학교에서 따로 미래학 과목을 배우거나 과학소설을 읽지는 않는다. 이미 영국이나 미국, 일본 등의 선진국에서는 국어나 읽기 교과서에 과학소설이 수록되어 있지만, 우리나라는 아직도 요원한 실정이다. 사실 교과서에 실리기는 고사하고 교육계나 정책수립 집단에서 과연 과학소설에 대해 어느 정도 수준의 인식을 갖고 있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장밋빛 유토피아의 전망에서 어둡고 음울한 디스토피아적 비관론까지, 과학소설은 우리 미래의 다양한 시나리오들을 스펙트럼처럼 펼쳐왔다. 과학소설가들은 시시각각 발전하고 있는 과학기술의 성과들을 발 빠르게 흡수해서 가능한 미래의 스토리로 풀어낸다. 이제 우리나라도 더 늦기 전에 과학소설의 상상력을 널리 보급하는 일에 몰두해야 할 것이다.

이다음에는 쥘 베른에 이어 과학소설의 아버지로 일컬어지는 H. G. 웰스의 작품들이 우리나라엔 어떻게 소개되었는지 살펴보기로 한다. 미리 얘기하자면, 우리나라에서 웰스에 대한 소개는 쥘 베른에 비해 아쉬운 면이 너무 많다. 흔히 그의 ‘3대 걸작’으로 꼽히는 <타임머신>, <우주전쟁>, 그리고 <투명인간>을 제외하면 웰스가 과연 어떤 인물이었는지는 거의 알려진 것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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