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이 소설을 인터넷에서 우연히 보았을 때는 제목이 특이하다고 느꼈고 왠지 모르게 정감도 갔다. 반쯤은 호기심으로 읽기 시작하다가 초반에 주인공의 과거 이야기를 읽고나서 몽환적이면서도 동화적인 분위기가 정말 마음에 들어서 그 다음부터는 하루도 빼먹지 않고 꼬박꼬박 읽게 되었다. 지금 나도 비슷한 나이여서인지는 몰라도 주인공 정우의 생각들이나 중에 마음에 와닿는 것들이 많았다. 그 중 하나가 어릴 적의 기억에 관한 것이다. 나는 어릴 적을 회상할 때면 항상 안개 낀 크나큰 놀이공원을 헤매는 기분이 든다. 비가 내려 우중충한 놀이공원의 습하면서도 맑은 공기 속에서 어린 나의 모습이 언뜻언뜻 보이는 그런 느낌 말이다. 또한 어렸을 적의 나는 여느 또래와 마찬가지로 가지고 노는 장난감이 정말로 살아있는 존재가 되어서 나를 지켜주길 바랐고, 크던 작던 동물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기억이나 분위기가 정우의 이야기와 너무도 닮아있어서 놀라웠고 한편으로는 조금 기쁘기도 했다.
정우처럼 가족과 갈등을 겪고 죽음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것은 어쩌면 이 세상의 거의 모든 청소년이 경험하는 일일 것이다. 나는 아직 세상에 대해서 모른 것도 많고 실수도 많은 나이이지만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게 여겨야 할 것들 중 하나가 가족과 죽음이라고 확신한다. 정우는 꿈의 세계를 여행하기 전까지는 가족에 대하여 반감마저 가지고 있었고 가족이 주는 사랑을 잘 느끼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자신이 자신을 죽인 끔찍한 경험을 한 후, 아니 어쩌면 꿈의 세계를 여행한 그 시간동안 내내 정우는 자신도 모르는 새에 가족의 소중함을 알아간 것일 수도 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곧 '가족에게로 돌아가는 길'이니까 말이다. 또한 죽음도 한 사람의 인생에 있어서는 소중하게 여겨야 할 하나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죽음에 대하여 가볍게 생각한다면, 그것은 살아있는 것에 대하여 가볍게 생각하는 것과도 같기 떄문이다. 정우가 어렴풋이 느꼈던 '검은 직육면체'는 피할 수는 없어도 한 사람의 생에서 중요하게 생각되어야 할 죽음을 감각적으로 잘 표현한 것 같다.
정우가 꿈의 세계를 여행한 이야기들 중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역시 눈보라 속을 혼자 걸어가야 했던 부분이다. 육체적,정신적으로 힘든 상태에 내몰려도 인간은 '마음'에 따라서 꿈의 세계에 있는 모든 환경이나 상황이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인간이 이겨내야 할 가장 강한 적수는 바로 그 자신이 지닌 약한 마음이라는 것을 김이환 작가님은 동화적인 분위기 속에서 잘 전달해주신 것 같다. 또 소설의 가장 마지막 부분과 이어지는 로봇을 되찾아오는 장면도 정말 인상깊었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넘쳐 나던 희망이 뼈저린 절망으로 바뀌는 경험을 한다. 햄버거 가게의 잠긴 뒷문은 아마 정우에게 그런 의미이었을 것이다. 용기를 내어 모든 것을 쏟아부은 끝에 도달한 목적지에서 아무리 두들겨도 문은 굳게 잠겨 열리지 않을 때 인간은 모든 것을 잃은 듯한 깊은 절망 속에 빠지고 만다. 그것을 새로운 희망으로 끊임없이 헤쳐나가며 인간은 살아나가야 한다고 정우는 우리에게 말해주는 듯 하다.
소설을 읽고 곰곰히 생각해보니 꿈의 여행 도중에 도움을 주거나 방해가 되었던 사람들 중 몇몇은 사실은 정우의 영혼의 단편일지도 모른다는 의문이 생겼다. 확대해석일지도 모르겠지만 표범이나 늑대는 정우의 숨겨진 강한 내면이고 이상한 가면을 쓴 남자나 자신을 제사장으로 사칭하던 남자는 결국 정우 속에 숨겨진 추악함이 아니었을까. 로봇을 찾을 때 어린 정우를 도와주었던 이가 바로 어른이 되어 자신의 삶을 선택하며 살아가는 정우 자신인 것처럼 말이다.
어쨌든 '집으로 돌아가던 길'은 나에게 많은 생각거리를 주었고 나 자신의 내면을 진지하게 성찰해 볼 수 있는 계기를 주었다. 무엇보다도 삽화의 분위기가 소설의 분위기와 잘 어울려서 더욱 집중이 되었던 것 같고 동화적인 분위기 속의 철학적인 논제와 날카로운 현실비판이 돋보이는 소설이었다. 그리고 이 소설을 통해서 처음으로 김이환 작가님에 대하여 알게 되어 기쁘고 이 분의 다른 소설들도 곰곰히 곱씹으며 읽어 보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