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합니다.
아마 모든 분들이 느끼는, 공통적인 생각이라 여겨지네요.
한 층 한 층 올라갈때마다, 시시각각으로 느낍니다.
때로는 자신을 박제한 박제사의 피냄새를 맡으며 섬뜩함을,
때로는 아름다운 동화의 씁쓸한 뒷이야기를 읽어내리며 안타까움을,
때로는 오드리 부인과 함께하는 라벨의 따스한 커피향을 맡으며 아련함을,
그 모든것이ㅡ기묘합니다.
선명하고 분명한 문체 때문일까요, 강렬한 이미지 덕분일까요.
표현을 떠나서, 글 자체에 악마적인 아름다움이 살아있습니다. 아무렇지 않게 마취된 환자를 내리치는 의사를 정말 간결하게 , 차갑게, 아름답게, 매혹적으로 그려냅니다. 자칫하면 기괴하게만 보일 것 같은 이야기를, 분명한 논리적 개연성으로 숨겨진 아름다움을 보여줍니다.
그야말로 탐미 공작이 반할 만한 이야기들인 것 같습니다.
그리스-로마신화의 이야기를 보면, <미다스의 손> 이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미다스는 신에게 무엇이든지 자신의 손이 닿는 것은 황금이 되도록 소원을 빌었지요. 좋아 보이기만 했던 이 능력은 식사를 할때 빵이 황금으로 변하고, 포도주를 마시려고 해도 황금으로 변하고, 황금으로 변한 딸을 바라보게 되므로서 그 허구성이 드러납니다.
라벨의 능력도, 이와 비슷합니다.
소원을 들어주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새로운 결과를 얻게 됩니다.
단순히 우산을 가지러 올라가는 귀찮음을 덜어버린 주스트씨부터,
죽기 전까지 첫사랑을 추억할 수 있는 소원을 빈 오드리 부인까지.
라벨은 그 모두가, 소원을 이루어 진심으로 "행복"하길 원합니다.
하지만, 마치 제로섬 게임처럼 한 사람의 "소원"은 다른 사람을 해칩니다.
울고싶어도 웃을 수 밖에 없는 아돌프와, 그토록 날고 싶어했던 마리와, 사랑하는 딸을 위해 아버지임을 포기한 남자처럼...
그런 그들을 바라보며, 라벨은 진심으로 슬퍼합니다.
왜 이러한 결과가 나왔을까요.
저는, "자신의 소원을 빌었기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그 사실 하나만 집착하고, 타인이 어떻게 될 지는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라벨의 소원을 대신 빌어주겠다는 소녀의 말은 시사점을 가집니다.
과연 라벨이 진정으로 들어주고 싶은 소원다운 소원은 이루어질 수 있을까요?
현재 연재는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저택의 중심에 있는 세 사람, 라벨과 마라공작, 그리고 보이드씨.
그들은 과연 어떤 관계일까요.
그리고 마지막의 마지막에서, 어떠한 반전이 일어날까요.
그 마지막을 기다리며, 다시 한 번 생각해봅니다.
"당신의 소원은 무엇인가요?" by 라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