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승객 여러분께 잠시 안내말씀 드리겠습니다. 비행기가 곧 착륙할 예정이오니 승객 여러분께서는 착륙 시 있을지 모를 충격에 대비해 자리에 앉아 안전벨트를 …….”
가람은 스튜어디스의 안내방송에 의해 잠에서 깨어난다. 어제 밤 가람의 작은 소란 때문에 잠을 설치던 사람들의 시선이 따가웠지만 원채 눈치 없는 가람은 아무 것도 모른다. 단지 가족을 놀래 켜줄 마음으로 미리 전화를 하지 않고 왔기에 벌써부터 몰래 보게 될 가족 때문에 마냥 설레는 가람이었다.
“호진이는 많이 좋아 졌을까?”
건강한 첫째 호빈 이와는 다르게 유전병을 앓아 몸이 좀처럼 크지도 않고 자주 잔병치레를 하는 호진이가 걱정인 가람이었다. 아내의 집이 여유 있던 시절엔 첫째를 유학도 보낼 수 있었고 처제나 호진의 병 치료에도 큰 걱정은 없었다. 하지만 부도로 기울던 가세는 4년 전 크게 어려워 졌고 아내인 호연의 아버지이자 그의 장인은 돌아오지 못할 곳에 스스로 떠나 버렸다. 그러자 크게 상심해 병을 얻게 된 장모마저 3년 전 세상을 떠났다. 힘들어 하는 두 자매를 볼 수 없었던 그는 없는 돈을 끌어 모아 두 자매모두 둘째 호진이의 병 치료 등을 이유로 첫째 호빈이가 있는 미국으로 보내려 했지만 아내의 동생은 한국에 계신 부모님을 돌볼 사람이 없다는 이유로 결국 한국에 남게 되었었다. 일이야 어찌 되었건 가족을 만날 생각에 한껏 부푼 가람은 자신의 처지는 생각지 않고 마냥 즐거웠다. 그 것이 오히려 그 다운 일이었다. 이번만큼은 오랜만에 보는 호진과 잔뜩 놀아줄 생각을 하며 가족이 있는 곳으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작은 마을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싣고 보니 타고 온 비행기 옆자리에 있던 눈에 익은 인물이 보였다. 바로 반대머리의 아저씨였다. 서로 머쓱해 하며 눈이 사를 하고 빈자리를 찾아가 자리에 앉는다.
"한국인이죠?"
"아. 네."
가람이 앉은 뒤 자석에 앉아 있던 반대머리 아저씨 아는 체를 해온다.
"어제 밤엔 실례가 많았습니다."
"허허 다들 곤욕이었을 겁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생각 할 것이 있으면 손에 뭐든 들고 만지작거리는 버릇이 있어서요."
그러면서 어제 밤 사람들을 잠 못 들게 했던 빵 봉지를 꺼내 보여주며 웃는다.
"그 녀석 이었군요."
"예."
"그런데 여기에는 무슨 일로 왔나요?"
"가족을 만나러 왔습니다."
"저런 기러기군요."
"예?"
"보통 가족을 멀리 보내고 혼자 생활하는 기혼 남성을 기러기라고 하지요."
"아~ 그렇군요. 제가 기러기였네요."
"기러기라는 녀석이 정말 불쌍한 녀석이거든, 어쨌든 이렇게 가족들을 보러 가니 많이 좋겠습니다. 나도 기러기 생활을 좀 해 봐서 아는데 할 짓이 못 되요. 너무 힘들거든."
"그렇죠. 저도 이러다 말라 죽는 게 아닌가 싶어서 무작정 비행기 타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허허 그렇죠. 그렇게라도 안하면 정말 말라 죽어버릴 것 같죠. 자식은 몇이나 있소?"
"아들만 둘입니다."
"자기 분신이 둘이나. 복 받으셨구먼! 난 딸만 하나라오. 워낙 곱게 키웠는데 딸내미들 뭐 시집보내고 나면 딴 집 사람이니. 벌써 재작년에 시집을 보냈다오."
"많이 서운하셨겠네요."
"그럼. 서운 하고말고 이 녀석이 자기 서방 좋다고 울지도 않는데 어찌나 속이 아리던지. 허허, 내가 이렇게 머리가 다 빠지도록 길러 놨더니 듣도 보도 못한 놈이 좋다고."
반 대머리 아저씨는 속이 많이 상했던지 반밖에 안 남은 머리를 쓰다듬으며 인상을 찌푸린다.
"따님을 많이 사랑하셨나보네요."
"어느 부몬들 안 그렇겠소. 하나뿐인 자식이라 더 그렇긴 했지."
자식을 생각하며 미소 짓는 그에게서 진한 아비의 냄새가 난다. 그래서였는지 한국에 있을 정 원사가 생각나는 가람이었다. 자신을 아들로 생각해주는 그. 하나 있던 딸을 암으로 먼저 보낸 뒤 얼마나 힘들어 했던가. 그래서였는지 그 자식에게 못 다한 정을 가람에게 아낌없이 나눠준 고마운 사람이었다.
"정말 좋은 아버지 같습니다."
"좋은 아비는 뭐. 남들만큼 해 주지도 못했는걸."
"아니요. 따님도 잘 알고 있을 겁니다. 자신을 사랑해 주는 아버지를 말입니다."
"뭐 모른다고 해도 괜찮아요. 그 녀석 낳을 때 난 모든 행복을 받았으니 말이오. 당신도 그렇지 않소?"
"네. 맞습니다. 이미 모든 걸 받았죠."
그렇게 대화를 하며 버스가 몇 정거장을 지나 도심지로 들어서자 반대머리의 아저씨는 자리에서 일어나 가람에게 인사를 건 낸다.
"난 거래처가 이 곳이라 먼저 내려야 할 것 같소."
"조심해서 일 마치시고 돌아 가십세요."
"그래요. 가람씨도 오랜만에 만나는 가족들과 행복한 시간 보내세요. 아 그리고 기러기생활은 웬만하면 빨리 접어요. 가족보다 소중한 것은 없는 것인데 그 가족이 곁에 있어야 힘이 나지."
"네. 이번에 꼭 그럴 참입니다."
"그래요. 그럼 잘 가시구려."
"안녕히 가십시오."
그렇게 길동무가 되어준 자신을 이 현중이라 밝힌 반대머리 아저씨는 가람에게 아비의 따스함을 보여주고 떠나갔다.
3
"흠.. 얼마나 남았나? 한참은 온 것 같은데. 역시 넓구나."
1시간여를 달리고도 앞으로 차를 바꿔 타고 얼마를 더 가야 할지도 모르는 이 땅이 가람에게는 정말 넓게만 느껴졌다. 그 뒤로 5분여를 더 달려 가람은 차를 갈아타고 다시 낫선 땅을 달린다. 가는 길이 너무 길어 이런저런 생각으로 무료함을 달래던 중 예전에 아내인 호연이 보내준 호빈이의 편지와 호진이의 일기장이 생각나 앞에 놔두었던 큰 배낭을 뒤적거린다. 거기서 이제는 자신의 보물과도 같은 너덜너덜 해진 몇 장의 편지와 그보다 더 심한 작은 일기장을 꺼낸다.
"일단은 호빈이 편지를 읽어 볼까?"
물론 급한 성격의 그가 보내온 편지를 여태 읽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편지가 오자마자 그 자리에서 2번을 읽었고 그 후로도 5번을 더 읽은 편지였다. 그나마 그것은 나은 것이었다.
호진의 일기장은 벌써 몇 번을 키득거리며 밤마다 펼쳐 봤는지 정말이지 겉표지는 너덜너덜해져서 일기장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뭐 특별한 내용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가람에게는 그 어떤 책보다 즐거운 것이었다. 그는 먼저 호빈이가 보내온 편지들을 훑어본다.
- 사랑하는 아빠에게
-거기는 좀 어때요? 여기는 매일 같은 무더위에 정말이지 살이 익을 것 같아요. 한국보다는 선선한 날씨라고 들었는데 뭐 어느 나라를 가든지 여름은 더운가 봐요. 거기도 많이 덥죠. 혹시 훈련 받다가 더위 드시면 안돼요.
(중략)
어제 캐서린이란 아이가 제게 고백을 했어요. 맙소사 그 아이는 우리 학교 최고의 퀸카예요. 제가 아빠를 안 닮아서 정말 다행이에요.
'이 자식이 내가 어때서.'
-그 아이는 우리학교 풋볼 팀 치어리더인데 사실 좀 머리가 빈 것 같아서 별로긴 해요. 뭐 그래도 주변을 의식해서 그냥 사귀어 주기로 했어요.
'그래 여자는 일단 많이 만나봐야 돼. 아~ 아빠는 네 어미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야. 뭐 후회는 없
지만 아들 넌 넓은 세상을 경험 하거라. 아빠는 해외 결혼도 찬성이다. 그래도 골빈 애들은 조심해야 하는데.'
-어쨌든 여기서 전 잘 지내고 있어요. 얼마 전에 본 시험에서도 제가 1등을 해서 이번에도 장학금을 받기로 했어요. 저 장하죠?
'그래 네가 애비보다 돈을 잘 벌어들이는 구나. 호연이의 유전자가 좋긴 좋아.'
-그래도 저는 여기보다 아빠랑 함께 살던 한국이 더 좋아요. 아빠랑 갔던 그 산들도
'이 녀석아 산은 네가 좋아서 갔지. 아빠는 산이라면 지겹다. 군대에서 산만 타는 걸.'
-그 강들도 바다도 이 곳 보다 훨씬 아름다웠어요.
'아빠 눈에도 그랬다. 우리가 함께여서 그 어느 곳 보다 아름다웠단다.'
-정말 아빠랑 다시 공도 차고 엄마 몰래 한강에 들어가서 수영도 하고
'네 엄마가 아빠를 아주 잡았다. 너 잡기 전에 날 먼저 잡아야 한다고 하지만 사나이는 체력이다 아들아.'
-그 모든 것들이 너무 그리워요. 아빠가 자주 오실 수 없다는 건 알지만 정말 너무 보고 싶어요.
'보고 싶구나. 근데 우리 이제 곧 만날 거야. 아빠가 이곳에 왔다.'
-언젠가 우리 큰 집 짓고 좋아하는 사람들 모두 모여서 함께 살아요.
'꼭 그렇게 하자. 우리'
-아빠 이건 진심이에요. 사랑해요. 아빠를 사랑하는 호빈 올림.
꼭 이 부분에서 항상 가슴이 짠한 가람 이었다.
-P. S 아빠 근데 저 캐서린하고 어디까지 가야 할까요?
그리고 이 부분에선 깊이 생각하게 된다. 예전 답장을 보낼 때 이렇게 보낸 것이 생각난다.
-아들아. 저번에 네가 마지막에 물어본 그것 말이다. 아빠는 이렇게 생각한다.
너는 남자다. 하지만 책임은 져라. 이상. 그리고 엄마한테는 걸리지 마라.
가람은 그 생각이 떠오르자 또 다시 바보처럼 웃게 된다. 그리고 몇 장의 편지를 보며 웃다가 심각해지다가 울 것 같은 표정을 짓기도 한다. 모두 아들의 타지생활이 얼마나 고되고 힘든가를 보여주었기에 가람은 한자 한자 글씨를 외우기라도 할 것처럼 편지를 읽었다. 호빈의 모든 편지를 읽고 가람은 그것들을 가방에 잘 갈무리 한다. 그리고 너덜너덜한 호진의 일기장을 펼친다. 삐뚤빼뚤한 일기장의 글자는 알아 볼 수 없는 글자도 있었고 호연이 고쳐 써 넣은 글자도 있었다. 하지만 너무 읽어서 그 어려운 지렁이 글자들도 그 어떤 것 보다 잘 써진 글자처럼 보였다.
'이걸 글자라고 생각 할 필요는 없잖아? 그림이야 그림. 호진이는 그림을 잘 그리는 거라고. 미술가를 시켜도 될 꺼야."
그것이 가람의 생각이었다. 아니 아빠의 생각이었다.
- 아빠에께
엄마가 이제부터 이거 쓰랬어. 이거 다 쓰먼 아빠 준대.
아빠 나 보코싶어요? 난 만히 보코싶어. 긍데 이거 쓰는거 너무 핌들어.
오눌은 그만 쓸래. 자랑해 아빠.
자랑해의 자자에 엑스 표를 살짝 치고 사자로 고친 부분에서 가람은 뭉클함이 느껴진다.
아픈 아이. 그 아이가 잘 못한 일은 하나도 없는데 천형이라는 굴레를 벗어나지 못해 유전병을 짊어진 아이. 그 아이가 자신에게 사랑한다고 글을 썼다. 자신은 해 준 것이 하나 없는데도. 아이는 아프지 말아야 한다. 아이를 아프게 하는 것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된다. 그것이 신이 선택한 일이라면 그 신에게 따져 묻겠다는 것이 가람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무엇도 해줄 수 없는 것에 호진만 생각하면 항상 가슴이 뭉클해지는 가람이었다.
-오눌은 만히 아파쩌. 엄마가 병헌가야 한데서 갔는데 큰 주사 낫서.
왜 나는 아파? 아빠가 이쓰면 안 아프게 해줄 텡데 그치 아빠?
'그럼 내 새끼. 이제 아빠가 안 아프게 해 줄게.'
-나는 형아처럼 학겨에 안가니까 시간이 만히 남아. 그래서 구르믈 만히 보는데
구르믄 참 이뻐 아빠도 하눌 만히 바?
'학교에 많이 가고 싶구나.'
-민 할무니네 갓는데 거기 이떤 애가 나 작다고 놀려써 나중해 아빠 오면
다 때려줘 알찌?
'혼쭐을 내주 마.'
어느 한 부분 의미 없는 것이 없고 가슴을 아리게 하지 않는 부분이 없다. 가람의 눈시울이 또 다시 붉어진다.
-아빠 나두 형아처럼 나중해 한구욱 가면 한강에서 수영 가치해.
-아빠 나는 산은 시러 그래도 형아하고 아빠하고 가치가면 조아 아빠가 업어 주니까.
아빠는 정말정말 쌔. 수퍼맨 가타. 지구에 나쁘은 악당들이 나타나면 아빠가 다 무리쳐 주꺼지?
'아빠가 곧 가마. 그럼 실컷 업어주마. 내 새끼.'
-아빠 오눌은 엄마가 만히 울엇서. 힘등가바. 아빠가 발리 와서 아나줘. 누가 아뿌게 햇나바
아빠가 혼내져. 우리 아푸게 하는 사람들 아빠가 다 혼내 줄꺼지?
'그럼 당연하지. 곧 우리 가족 힘껏 안아주마.'
-아빠 어제와? 발리와. 보코십퍼. 사랑해.
'아빠가 갈게. 조금만 기다려 호진아.'
가람은 일기장을 닫으며 차가 빨리 달리기를 염원해 본다. 그러면서 마지막으로 호연의 편지를 열어 본다. 유독 그 편지만은 깨끗했다. 많이 보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닳을까 무서워 살살, 찢어질까 무서워 살살 본 탓이다. 그리고 꼭 보고 싶을 때만 참고 참다가 봤기에 그나마 무사할 수 있었다.
-가람씨에게
[거기는 지금 어때요? 너무 춥지는 않나요? 사병들 보면 창피하다고 내복이나 깔깔이 안 입고 다니지 말고 꼭 입고 다녀요. 또 남자는 깡이다 이런 말 하다가 감기 걸리지 말고요. 가람씨가 아프지 않아야 우리도 아프지 않은 거. 알죠? 여기 생활도 민 할머님 덕분에 잘 적응해 가고 있어요. 처음엔 하루에도 몇 번씩 가람씨가 있는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조금 더 조금만 참자. 참자. 하며 지내다 보니 어느새 이렇게 시간이 흘렀네요. 저 이제 많이 강해졌어요. 제 걱정은 하지 말아요. 호진이도 이제는 적응을 한지 그렇게 힘들어 하지는 않아요. 처음에는 얼마나 보채던지 참 많이 힘들었어요. 이제는 조금씩 말도하고 사람들 앞에서 주눅 들어 하던 것도 많이 좋아졌어요. 그러니까 이젠 너무 걱정하지 말고 항상 가람씨 몸을 먼저 생각해요. (중략) 우리 얼굴 본지도 7개월이 다 되어 가네요. 하지만 가람씨 사진 항상 몸에 지니고 꺼내 보기에 절대로 얼굴을 잊어버리진 않아요. 그런데도 가끔가다 너무 보고 싶어지면 얼굴이 생각이 안 날 때도 있어요. 그럴 때면 얼른 사진 꺼내서 보고 있어요. 걱정 말아요. 예전에 울보처럼 그렇게 많이 울지는 않아요. 이제 조금 있으면 당신 생일인데 미역국 못 끊여 줘서 미안해요. 꼭 따뜻하게 하고 다니고 미역국은 꼭 챙겨 먹어야 해요. (중략) 가람씨 나랑 결혼해주고 내게 이런 보석 같은 아이들을 줘서 정말 고마워요. 당신이 이 세상에 있어 줘서 정말 다행이에요. 사랑해요.]
'나야 말로 당신이 내 곁에 있어줘서 감사해. 호연아 사랑해'
가람은 이번만큼은 호연에게 지금까지 잘 못해준 사랑한다는 말을 하겠다고 다짐하고는 편지들을 배낭에 잘 갈무리하고는 즐거운 미소를 지으며 버스의 창으로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본다. 이제 곧 만나게 된다. 곧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