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2. 한태운의 경우.



“태운! 당신이라도 도망쳐요!”


어라연히프제(내 직속 수하들)중 하나가 크게 외쳤다. 아군의 피해가 막심하다. 적들은 프로 용병들, 실전경험이 비교적 부족한 수하들은 점차 뒤로 후퇴하기 시작했고, 전황은 크게 불리해 졌다. 물론 장수가 군사를 내팽개치고 달아나는 경우는 없다.


“그럴 순 없지.”


옆에서 검을 길게 배어 오던 사내는 어디선가 날아온 화살에 머리가 터져 죽었다. 팍, 하고 튀어 오르는 뇌수와 두개골의 파편. 피가 볼에 엉겨 붙었다. 그것을 때어 내며 다시 앞으로 한걸음 옮겼다.


“한태설! 어디에 있느냐! 나와랏! 끝장을 보자아앗!”


그리고 눈앞이 어지럽게 흩날렸다.


“내 이름은 헬레나.T.왈츠라이터. 구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귀하의 성함은 어떻게 되시는지?”


“저는 ‘동중한가’의 차남, 한태운입니다. 만나 뵈어 영광입니다. 레이디 왈츠라이터.”


아. 주변 여기저기에 있는 참담한 전투의 흔적과 들어난 아스팔트, 검에 찢겨진 가로수. 익숙한 뒷거리···. 그리고 그리운 헬레나 양이 보였다. 아마 헬레나 양과의 첫 대면이었을 것이다. 그땐 정말 정신없이 싸웠지, 그때의 전투가 결국 내게 더욱 큰 세상을 알려주게 되었다.


다시 눈앞이 어지럽게 흩날렸다.


“야호! 오랜만이네요, 선배. 얼마만이죠?”

“그래 오랜만이구나, 한 시간 만이던가?”


매 수업이 끝날 무렵 달려와 인사를 나누던 소녀가 보였다. 처음 만나 미친 듯이 싸운 이래로 급격하게 사이가 나아진 멜포메네. 조금 당황스러운 이름이었지만 한국말을 정말 유창하게 잘 했기에, 게다가 무엇보다 엄청나게 예뻤기에 그녀와는 빠르게 깊은 친분을 가지게 되었다. 그녀를 알게 된 다음부턴 학교생활이 참 즐거웠던 것 같다.


다시 눈앞이 어지럽게 흩날렸다.


“안녕! 초면이지? 이름이 장예림··· 이라했던가?”

“······.”

“이봐 형님, 그런 식으로 말을 걸면 안 되지! 이 아름다운 아가씨가 당황하시잖아.”

“······.”

“허, 그럼 넌 뭐라 말을 걸고 싶은데?”

“당연히 ‘오! 아름다우신 그대여! 그대의 그 아리따운 입으로 부디 그대의 고귀한 이름을 내게 가르쳐 주지 않겠소!’ 라 시작해야 하지.”

“······풋.”


그때 예림인 결국 조용히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었지. 중 2 무렵이었을 게다. 선대 가주님의 절친한 벗, 검선劍仙님의 손녀가 마침 나이가 비슷해 검선님이 선대 가주님과 잠시 쉬기 위해 가문에 들렸을 적에 함께 들린 그녀는 정말 조용하고 내성적인 소녀였다. 하지만 웃음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땐 적어도 나와 동생과의 사이가 괜찮았기에 나도 즐거웠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후엔 냉담해 졌지만.


다시 눈앞이 어지럽게 흩날렸다.


“성스러움을 행하는 이의 손길에 의해 몰락하리라.”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는 행사가 ‘의예’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동중한가의 한시들이 모두 일생에 한번, 그들 스스로가 관문이라 생각하는 어떤 장벽을 넘는 경험을 했을 경우에만 이 ‘의예’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나도 스스로의 장벽이라 생각했던 것을 극복해 냈고, 바로 그 날로 가주로부터 의예를 받았다. 의예라 함은 한시에게 스스로의 죽을 자리를 알려준다는 예언문구. 고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탁’과 유사한 행사이다. 신탁의 성격이 으레 그렇듯 의예 또한 모호한 말을 설명해 놓은 경우가 대부분인데. 그럴 때 해석은 가주가 해 주기로 되어 있다. 그것은 가문의 직계들만 볼 수 있는 ‘동가결’이라는 고서에 나오는 글귀들만 의예에 나타나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 ‘동가결’에서 ‘성스러움을 행하는 이’라는 의미는······.


“그러니까 즉, 네 녀석은 ‘여자’에게 죽는다는 뜻.”


이 날. 난 여자를 조심해야겠다는 생각보단 페미니스트가 되겠다는 생각을 품게 되었다. 어떤 여자가 등을 노린다고 그 여자를 배척하는 것은 한시의 가르침이 아니다. 성인군자가 되라는 것은 아니지만 한시는 일단 호국무술이기 때문에, 대체로 ‘아군’으로 정의된 자들에게 한없이 자비로운 것이다.


다시 눈앞이 어지럽게 흩날렸다.


“겨우 깨달았군.”


  그랬지, 난 죽었었다. 아니 지금 시간계산이 안되니, 죽고 있는 와중이라고도 생각되는데, 하긴 인간이 그런 상처를 입고 살아 있을 리가 없잖아. 이제 남은 건 사후세계 뿐인가? 그럼 방금 것은 주마등? 하지만 주마등이라면···. 무언가 잊은 것이 있는 것 같은데, 중요한 것이···. 착각인가?





다시 눈앞이 어지럽게 흩날렸다.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나?”


두 번은 사양인데, 머리가 울려 이 빌어먹을 장면 전환. 이번엔 또 무슨 기억이지? 이런 공간에 와본 기억은 없는데? 온 세상이 검고 탁한 색으로 점철되어 있어서 거리가 가늠되진 않는다. 말 그대로 별 없는 우주라는 느낌이네. 보이진 않아도 바닥은 확실히 있는 것 같은데. 아니 - 잠깐만. 저건 또 뭐야.


“누구냐? 거기 누구 있어?”


윽! 의식하자마자 지독한 냄새가 올라온다! 혈향血香? 아니 그것보다 조금 더 독한 비린내가! 다친 데다 썩은 건가? 이런, 이런 곳에선 응급처치도 힘든데?


“크르르륵!”


목이 끓는 소리! 하지만, 뭐랄까. 묘하게 인간의 성대에서 날 법한 소리는 아닌데? 이제 슬슬 실루엣이 보이기 시작했다. 검고 흐린 배경 사이로 조금씩 비쳐 보이는 모습은···!! 서.. 설마!


“네놈! 인간이 아니구나!”


인간이 아닌 녀석? 짐승이군, 거대 육상 포유류··· 정도로 밖에 예상할 수 없어, 조명이 너무 부족하다. 지금은 단순히 윤곽선만 보이는데..? 갑자기 덤벼들려나? 아니야, 일반적인 짐승들의 경우엔 적의가 없을 때 덤빌 리가 없는데, 하지만 만약 육식 동물류라면?


“미안하지만 정당방위가 성립되는 수밖엔 없겠지?”


괜히 소리쳐서 자극할 필욘 없으니 조용히 기다리자, 이 상황이 어딘가의 기억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해, 지금 내 몸은 죽기 전날 아침의 상태니까. 즉 다시 말해, 오늘의 피크라 이 말씀. 고작 짐승 따위한테 죽어 줄 순 없지. 그럼 내 동생에게 너무 미안하잖아.


“캬아아악!”


거대한 외침과 함께 돌진해 오는 실루엣! 가까이 보니·····. 엄청 크다! 정말 엄청나게 커! 저·· 저건 무슨! 저런 모양으로 돌아다녀도 체내 열량을 맞춰가며 움직일 수 있나? 대체 얼마나 먹으면 저런 몸이 유지되는 거지? 어쨌든 지금은 피한다!


“핫!”


엄청난 위력의 휘두르기 였다. 완벽하게 피했는데 꼼짝없이 풍압에 말려들어 버렸다. 게다가 이 녀석 싸우는 테크닉이 예사롭지 않아? 풍압에 휘둘려 있으려니 바로 다음 일격이 들어왔다 간신히 피했지만 역시 몸이 붕 떠버리는 공격이다. 이런 거, 한방이라도 허용해 버리면 그대로 몸이 분쇄되어 버리겠지. 이런 식으로 싸우는 것은 보통 내 쪽이었는데, 이번엔 내가 힘에서 달려버리기 때문에 이렇게 위기상황까지 몰려버렸군, 역시 평소에 힘만 단련하지 말고 기술도 조금 익혀놨으면 편했을 텐데. 정식 격투술은 배운 적도 없고··· 왓!


“하!”


정말 거침없이 공격해 오는군! 몸을 숙여 피했다고 생각했는데 바로 종단으로 휘둘러 왔다. 옆으로 굴러 피했다. 쾅! 따······ 땅바닥이 울려? 무슨 발차기 한방에 저따위로? 여, 역시 저거 맞으면 안 되겠어. 진짜 한방이면 두 번 죽겠다. 그나저나 여긴 어디지?


“으와악! 제발! 사색할 시간이라도 줘!”


젠장! 딴생각 하면 그대로 가는 건가? 간신히 피했어! 뭐야 저 녀석! 터무니없이 민감해! 하지만 이대로 당하고만 있을 순 없지. 다음 공격에 카운터다. 욱! 엄청나게 위력적인 횡단 지르기. 몸이 그 엄청난 압력으로 뛰어 올랐다. 그렇담 이 기세를 모아 녀석의 가슴팍에 한 방 후린다!


“크···· 앗?”


순간 눈앞에서 별이 튀더니 몸이 부웅 떠서 날아가는 것이 느껴졌다. 이윽고 자유낙하, 제.. 젠장, 낙법이라도? 어라? 다리 아래가 없어? 하.. 하하! 이게 무슨 농담 같은 일이! 그나저나 왜 이렇게 졸리지? 아아... 적을 앞에 놓고 자면······ 안되는······ 데.


다시 눈앞이 어지럽게 흩날렸다.



---

 

띄어쓰기, 글자 크기, 글의 분량. 적절했습니다! 하지만 문체와 내용이 부적절하군요.

 

어쨌든 프리페이스는 끝났습니다. 다음 편부터는 본편이 진행됩니다...

 

아직 비축분이 조금 남아있으니 한번에 확 올리고 싶지만요, 사실 제가 게을러서 비축분을 금방 버닝하면 한동안 못쓰기 때문에 말이죠. 오늘은 여기까지가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는 말입니다.. 사실 이렇게 굽실거리고 싶진 않았습니다. 그래도 말이죠... 제발 덧글좀?

 

-Gaway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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