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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판타지와 나 1> - 송경아

 

사실 저는 제가 이 자리에 ‘판타지 작가’라고 분류되어 앉아 있는 것이 약간 당황스럽습니다.

한국에서 판타지라고 말하면 보통은 장르 판타지를 말하기 때문에, 옆에 와 계신 이영도씨는 한국에서 최초의 한타지 작가요 한국 장르 판타지의 창시자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영도씨가 한국 찬타지 팬덤(fandom)에서-그리고 여타의 하위 장르(subgener) 팬덤에서도- 전설적인 작품 <드래곤 라자>를 내면서 한국의 장르 판타지는 일반 독서 시장에 진출했습니다. 하지만 저의 정체성은 애매합니다. 저는 지금까지 장르 판타지를 한 편도 써본 일이 없으며, 에픽 판타지를 쓸 능력이 있는지도 의심스럽습니다. 이영도씨가 5개월에 걸쳐 12권짜리 사가(Saga)를 통신망에 연재하는 것을 실시간으로 직접 보면서, 저는 그 길이와 속도만으로도 얼마나 부러움에 불탔는지 모릅니다. 그러면서도 저는 환타지 문학상의 심사 위원을 두 차례 맡았으며, 판타지와 SF 두어 권을 번역했습니다. 언론에서는 판타지나 하위 장르 소설을 취재할 떼 떼떼로 제게 의견을 묻곤 합니다. 제가 한국 판타지의 주변에 서 있으면서 지금의 한국 판타지의 성장 과정을 지켜보았고, 판타지 작가는 아니지만 판타지 팬덤을, 넓게는 하위 장르 팬덤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는 드문 주류 작가에 속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야기를 계속하려던 저에 대해, 그리고 제가 글을 써온 사회적 문학적 환경에 대해 조금 설명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대학을 졸업하던 1994년 문학 잡지에 <청소년 가출 협회> 라는 단편을 실으면서 직업 작가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청소년 가출 협회>는 기성 세대와 제도에 대한 청소년들의 반항의 상징이었던 ‘가출’이 공인된 학생 자치 단체인 ‘협회’에 의해 제도화되고 순치된다면 그런 사회 속에서는 어떤 반항이 가능할 것인가 하는 아이디어를 이야기로 만든 것이었습니다. 제가 첫 책을 출판한 1994년은 한국에 상업적인 PC 통신이 시작된 지 몇 년 지나지 않았을 때고, 아마 저는 주류 작가 그룹에서 최초로 ‘손이 아니라 컴퓨터로 글을 쓴다’고 공언한 작가였을 것입니다. 당시만 해도 한국 문학의 전통에 대한 존중과 현신에 대한 갈망이 서로 공존하며 갈등하던 시대였기 때문에, 저는 손이 아닌 컴퓨터로 글을 쓰고 제 이야기에 직접적으로 현실을 반영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기대와 의심에 찬 눈초리를 동시에 받았습니다.

 

당시 PC통신에서 글을 연재하고 그것을 오프라인에서 책으로 내어 상업적으로 성공하는 작가들이 몇몇 생겨났습니다. 그런 작가들은 대부분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거나 한국 주류 문학의 전통에 편입되지 못하고 베스트셀러 한두 권만 낸 채 잊혀졌습니다. 그런 작가들을 주로‘ 통신작가’라고 불렀는데, 저는 잡지에 글을 싣기 전 통신망에서 문학 동호회 활동을 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그쪽으로 함께 분류되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많은 작가들이 인터넷을 자유자재로 이용하고 있지만, 그때만 해도 ‘통신작가’라는 호칭에는 정식으로 문학잡지나 문학 전문 출판사에서 글을 출판한 능력이 없다는 약간의 경멸과 신기함, 상업성보다 문학적 가치가 부족하다는 비난의 뉘앙스가 함께 들어 있었습니다. (이건 제게는 이중으로 억울한 일입니다 저는 상업적으로 성공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으니까요)

 

그러나 1990년대는 한국 대중 문화의 급속한 성장기였습니다. 냉전이나 독재 같은 정치적 상황이나, 검열, 자본과 기술적 문제 등의 환경이 동유럽 사회주의 붕괴와 민주화, 청년들의 당양한 문화에 대한 욕구, 그리고 컴퓨터의 보급과 맞물리면서 빠르게 달라졌습니다. PC통신에서 인터넷으로 이어지는 IT의 발달이 무한한 잠재력을 품고 있으며 1980년대에 비해 독자들과 만날 기회가 위축된 주류 문학에도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어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문학 잡지 편집자들은 컴퓨터와 문학의 만남에 대한 기획 특집을 많이 마련했습니다. 그리고 그 주제에 대해 이론적으로 고찰하는 비평가들과는 달리 통신만 안에서 통신망의 분위기를 호흡하며 자란 작가는 드물었기에 그 주제에 대해 글을 쓰라는 부탁을 많이 받았습니다.

 

여러 가지 대중 문화가 분화하고 발달해오던 1990년대 후반, 이영도씨의 <드래곤 라자>가 PC통신의 장편소설 연재란에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평균 조회수 100을 넘는 작품이 드물던 장편 소설 연재란에서, 올라오자마자 조회수 천을 가볍게 넘겨 버리는 <드래곤 라자>는 독보적인 존재였습니다. <드래곤 라자>를 보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잠을 자지 않고 통신망 속을 서성거리는 독자들은 스스로를 ‘일상 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이영도씨의 다음 연재 글만 기다리는 사람’이라는 뜻에서 좀비라 칭하고 이영도씨를 좀비들을 불러일으키는 네크로맨서라고 불렀습니다. 통신망을 넘어서서 종이 위에 인쇄되자 <드래곤 라자>는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키면서, ‘통신 소설’이 아니라 ‘판타지’라는 독자적인 하위 장르 소설이 있다는 것을 한국 독자들에게 알려 주었습니다. 그 후 판타지는 몇 년 동안 한국 출판 시장에서 큰 비율을 점유했고, 다른 하위 장르 소설의 성장도 고무했습니다.

 

특히 판타지는 10대 청소년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고, 이것은 양날의 칼이 되었습니다. 10대 들은 새로운 세계를 원하지만, 단순한 소망충족을 원하기도 합니다. 미남 혹은 미녀들을 애인으로 두고, 점점 강해지면서 적을 무찌르는 RPG식의 글들이 진지한 글보다 더 널리 읽혔습니다. 삶의 성찰을 담은 글보다 틀에 박힌 모험담에 엉뚱한 착상들을 접목시킨 글이 온라인에서 인기를 끌면서 조회수 외의 기준 없이 앞다투어 출판되었고, 그 결과 상투적인 이야기에 식상한 많은 독자들이 판타지를 떠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판타지를 떠나지 않고 꾸준히 습작을 계속하는 청소년들이 상당수 존재하고 이들이 인터넷 상에서 웹진 등의 형태로 활동하고 있다는 것은, 앞으로 5년내지 10년 안에 새로운 판타지 작가 세대들이 탄생할 것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좀 묘한 위치에 들어가 버렸습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저는 장르 판타지 작가라기보다는 주류 문학 작가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드래곤 라자>의 해설을 쓰면서 판타지 장르의 성립 초기에 판타지에 대한 담론을 생산하는 입장에 서게 되었습니다. ‘통신 소설’이나 ‘컴퓨터와 문학의 만남’같은 주제로 글을 썼던 것과 마찬가지로 ‘판타지 소설이란 무엇인가’같은 주제도 다루게 되었습니다. 아마 그래서 제가 여기에 ‘판타지 소설가’로 불려온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제가 그런 글에서 이야기한 것은 대체로 1980년대까지 리얼리즘 소설에 주력했던 한국 소설에서 갑자기 새로운 서사 영역으로 등장한 환상 (혹은 비-실재?) 의 의미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제가 낸 소설에서 판타지는 의미가 고정되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급속도의 경제 발전을 이룬 근대 한국에서 저는 자유로이 ‘동화’를 읽고 자린 첫 번째 세대입니다. 그 ‘동화’ 중에서는 SF나 판타지, 추리소설의 명작들도 섞여 있었지만 제가 그것을 장르로 구분할 수 있게 된 것은 20대에 들어서서였습니다. 그리고 제가 글을 쓰고자 할 즈음이 되어서는 그 장르 구분도 저에게 별 의미가 없었고, 장르 판타지는 아직 태동하기 전이었기 때문에 저는 리얼리즘과 판타지에 대한 당시의 고정관념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웠습니다.

 

첫 번째 소설집 <성교가 두 인간의 관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문학적 고찰 중 사례연구 부분 인용>을 보면, 장르 판타지 단편에 그나마 가깝다고 할 수 있는 것은 단하나 ‘소환’ 밖에 없습니다. 현실적인 이야기를 다룬 것이 절반, 환상적인 이야기를 다룬 것이 절반 정도 되고, 환상적인 이야기는 대부분 소망충족이 이루어지면 어떤 엉뚱한 일이 생겨날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표제작에서는 혼전성교가 범죄시되던 그 당시 한국 상황에서 애인과 첫 섹스를 앞둔 여성의 조마조마한 심정과 애인과 섹스를 하고난 남성의 허탈한 심정을 번갈아 보여준 후, 그 둘이 만나는 장소 벽 뒤에서 숨을 죽이고 귀를 기울이고 있던 작가 ‘나’를 갑자기 나체로 끌어내 불쾌감과 웃음의 대상으로 만들었습니다. 글을 쓰면서 의미와 서사를 장악하고 있지 못하다, 독자에게 이야기를 잘 하고 있는 것 같지 않다는 초보 작가의 답답함이 역설적으로 ‘차라리 인물과 같은 상황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는 소망으로 변했고, 만약 그렇게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하는 상상이 그 단편을 끝맺음한 셈입니다.

 

그 후 제 소설은 계속 순수한 백일몽의 즐거움과 그 실현의 두려움, 알레고리 사이를 오가고 있습니다. 단편 <책>은 제가 늘 느끼는 두려움, 만약 내가 죽은 후에 누가 내 일기장을 들여다보면 얼마나 부끄러울까, 더구나 그 일기장에 내가 저지른 실수나 잘못이 여과 없이 적혀 있다면, 너무나 부끄러워서 죽었다가도 살아오고 싶겠다는 생각을 이야기로 만들어 본 것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죽은 엄마는 ‘책’으로 변합니다. 그 ‘첵’에는 죽은 엄마가 한 일과 그때의 심정을 속속들이 드러나 있습니다. 딸은 그것을 보고 자신이 혼외 관계에서 태어난 아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지만 딸에게는 생부가 자기를 인정하느냐 하지 못하느냐 하는 문제보다. 자신이 죽은 후에 엄마같이 책으로 되살아나 살면서 만들어온 치부를 보이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 더 중요합니다. 그래서 딸은 작가가 되어, 자기 삶에 대한 수많은 위조본, 파본, 복사본 등을 만들기로 결심합니다. 건초 속에 바늘을 숨기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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