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장르에 있어 게임이라는 미디엄(medium)이 가지는 의미> - 홍인수
SF라는 장르를 표현하는 미디엄(수단/매체/방법)은 소설도 있지만 만화, 영화, 게임 등 다양한 미디엄이 존재한다. 특히 이 중에서 게임은 SF적 장치가 꽤 많이 쓰이는 미디엄이면서도 장르 정체성이 가장 약하다고 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스타크래프트를 즐기고 프로리그가 운영되고 있지만, 스타크래프트를 SF로서 인지하고 플레이하거나 경기를 시청하는 사람은 지극히 소수이다. 게임은 그 특성상 플레이 과정에서 SF라는 장르 인식을 크게 하지 않아도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본 글에서는 이렇듯 소비자의 장르정체성이 가장 약한 게임이라는 미디엄에 어째서 SF라는 장르의 이름을 붙일 수 있는 것인지, 또한 SF의 구현에 게임이라는 미디엄의 특성은 어떤 영향을 주는지 살펴 보고자 한다.
상상의 시각화와 체험이라는 게임의 본질은 필연적으로 SF와 깊은 관계를 맺게 된다. SF는 변화, 특히 과학기술로 인한 변화에 중점을 두고 변화 그 자체 또는 그 효과를 그려내는 장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그 전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어떤 것의 출현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므로 당연하게도 상상을 동반하게 되며, 이러한 상상의 구현은 SF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상상의 구현 과정에서는 문학적 요소가 개입되게 되며, 최소한 SF소설에서 문학적 질이 충족되지 않은 채 상상에만 치중한다면 그것은 잘 쓰인 SF라 할 수 없다). 해양생물학자이자 SF 작가인 피
체험이라는 측면에서도 영화와 게임은 차이를 보인다. 스타트렉과 같은 오버테크놀로지의 세계에서는 홀로그램 기술이 극한으로 발전하여 영화가 곧 게임이 되고 이 모두가 현실이 될 수 있지만, 아직까지 21세기의 지구에 그러한 기술은 없다. 따라서 영화와 게임 모두 간접 체험이라는 한계를 지니게 되지만, 영화의 간접 체험과 게임의 간접 체험은 질적으로 큰 차이가 있다. 앞서 언급했던 상호작용성으로 인해, 게임의 간접 체험은 게이머에게 보다 많은 주도권을 선사한다. 즉, 게이머의 결정에 따라 이루어지는 동적 시각화라는 게임의 특징은 ‘관람’이라는 영화의 특징과는 전혀 다른 것이며, 이를 통해 게이머들은 보다 능동적이고 개인적인 차원에서 SF의 세계를 체험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폴아웃 (Fallout)> 시리즈는 핵전쟁 이후의 세계를 그린 RPG로, 게이머는 핵전쟁 이후의 황폐화된 세계를 탐험하며 인공적인 대파국인 핵전쟁이 가져온 다양한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해야만 하며, 이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핵전쟁 이후라는 SF의 고전적인 주제를 ‘체득’하게 된다.
즉, 게임은 소설과 영화와는 달리, 사용자/관객/독자가 게이머가 되어 능동적이고 자기주도적으로 SF를 실체화하고 그것을 체험할 수 있는 미디엄이다. 또한 게임은 상상을 시각화하여 체험할 수 있게 해 주므로, 상상이 핵심이 되는 장르인 SF구현에 매우 적합한 미디엄이며, 그 내용이 SF의 정의에 부합한다면 비록 게이머가 인지하지 못한다 할 지라도 그 게이머는 SF를 즐기고 있는 것이며, 해당 게임은 SF게임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게임은 근본적으로 몇 가지 한계점이 있다. 비단 SF게임 뿐 아니라 많은 게임들이 지니는 문제로, 소설과는 달리 ‘이야기’ 그 자체를 즐길 수 있는 게임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수많은 게이머들이 스타크래프트를 즐기지만, 정작 그 스토리를 알고 있는 게이머들은 소수이다. 이는 대부분의 게이머들이 스토리를 즐기는 싱글 플레이보다 네트워크를 통한 멀티플레이에 더 중점을 두기 때문이며, 이런 추세는 개발사에도 영향을 줘 <퀘이크 (Quake)>와 같은 게임의 경우는 극단적으로 개발 단계부터 싱글 플레이는 그저 멀티플레이를 위한 연습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이런 멀티플 또한 상호작용성과 시각화라는 게임의 본질적인 특성 자체가 한계를 만드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독자로부터의 피드백을 거의 고려할 필요가 없는 소설과는 달리, 상호작용성이 없는 게임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게임에 적합한 SF컨텐츠는 SF장르 전체의 스펙트럼 중에서 일부분으로 한정된다. 예를 들어 자폐인 주인공의 시선에서 정상과 비정상의 문제를 다룬 훌륭한 SF인 <어둠의 속도>를 게임으로 만들 수 있는 게임 제작자는 아마 없을 것이다. 혹자는 루의 시선에서 세상을 탐험할 수 있는 어드벤쳐를 만들면 되지 않냐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이것은 단순한 상호작용성의 구현일 뿐 <어둠의 속도>의 주제의식을 담아낼 수도 없고, 게임으로서도 가치가 없는 프로그램이 되고 말 것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게임은 SF를 즐기는 데 더할 나위없이 적합한 미디엄이라 할 수 있다. 앞으로도 더 많은 사람들이 게임을 통해 SF의 진정한 재미를 체험하고, SF만이 줄 수 있는 경외감을 느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